국내 게임사들이 주요 돈벌이로 삼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을 향한 게이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게이머들 스스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 트럭을 빌려 게임사 앞으로, 국회 앞으로 보내고 있다. 분노한 게이머들의 핵심 요구는, 확률형 아이템 즉 '뽑기'를 살 때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을 확실하게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와 깊이 있게 소통하며 이들을 대변해 온 한국게임학회장 위정현 교수는 "확률을 공개하는 것이 옳다"며 게이머들 편에 섰다.
지난달 25일 중앙대에서 만난 위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이 국내 게이머들로 하여금 게임을 향한 불신을 더 키우고, 좌절감에 빠지게 했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우리 게임 산업의 미래도 어둡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임사들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도 모자랄 판에 기존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으로 벌어들이는 손쉬운 돈에 만족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현재 '트럭 시위'를 진행 중인 게이머들이 주로 문제 삼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은 '뽑기권'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게임을 쉽게 즐기기 위해서는 좋은 아이템이 필요한데, 최상의성능을 지닌 아이템은 '뽑기'에서 낮은 확률로만 나온다. 게이머들은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뽑기'를 살 수밖에 없고, 게임사 입장에서는 이것이 주 수입원이 된다.
현재 게임사들은 원칙적으로는 자율규제를 설정해 이런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확률 아이템의 경우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또 일부 게임은 공개된 확률과 실제 확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확률 조작' 의혹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심사 중인 게임법 전부 개정안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들어갔는데, 게임업계를 대변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가 "확률 정보는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며 이 조항에 반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위 교수는 "트럭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용자들의 요구는 정도가 강하지 않다"고 평가하며 "만약 게임사들이 현재 법 개정안에 응하지 않으면 곳곳에서 아예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입법도 그 방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안이 옳다는 입장을 냈다. 업계를 잘 이해하실 텐데 정 반대 입장을 낸 것이 이채로웠다.
"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확률형 아이템은 자율 규제가 맞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지난 6년 동안 자율규제를 했는데 실효성이 있었냐며 따지고 있다. 트럭 시위가 번거롭고 힘들지 않겠나. 경쟁사에서 준 돈도, 정부가 준 돈도 아니고 직접 자기 주머니에서 십시일반 모아서 트럭을 빌려 게임사 앞으로 보내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근본 원인은 ①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신, ②그리고 좋은 아이템에 당첨될 확률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과거 '데스티니 차일드'라는 게임은 한 이용자가 무려 3,600만원을 들여 뽑기를 검증한 끝에, 실제 확률이 게임사가 알려준 확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우리 게임사들이 왜 확률형 아이템만으로 비즈니스를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최근 흥행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 같은 게임은 확률형 아이템에만 기대지 않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은 어떻게 하면 수익 모델을 다원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트럭 시위를 벌이는 이용자들의 요구 정도는 강하지 않다.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중단해라, 없애라, 이런 게 아니다. 그저 확률을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용자들은 확률형 아이템으로 돈을 버는 (게임사들의 비즈니스) 구조 자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게임업계가 대응하기 정말 버거워진다."
-실제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규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게임 산업 역사를 보면 폭력성, 사행성, 셧다운 등 이슈가 터질 때마다 뒷북 대응을 되풀이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국회와 정부에서 규제를 시도하고, 업계에서 자율로 대응한다고 하다 결국 제대로 대응을 못 해서 정치권의 칼이 들어오는 현상이 반복됐다. 현재는 논의가 되고 있지 않지만, 실제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에 대해서는 청소년의 과금 제한을 시도한 입법 사례가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도 논란이 계속되면 지나치게 낮은 확률 자체를 제재한다든지, 청소년은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할 수 없게 하는 식으로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해외에서는 벨기에와 일부 지방 정부에서 정부 차원에서 규제한 사례가 있다. 자율규제 측면에서 일본을 참고할 수 있는데, 업계의 힘이 강하지만 게임사들이 먼저 손을 들고 자율규제를 따른다."
정치권도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게임법 전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계가 게임법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다름아닌 확률형 아이템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업계의 우려를 반영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중론을 폈지만,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은 특정 게임들을 언급하며 '확률 사기론'을 펴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하겠다고 주장했다.
-게임사는 확률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확률 공개가 어렵다고 하는데.
"일본도 확률이 변동하는 것은 맞다. 24시간 바뀐다. 아침 일찍, 밤 늦게는 확률이 올라간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많은 낮과 저녁 시간대에는 확률이 떨어진다. 확률을 높이고 싶으면 서버가 비어 있는 시간대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건 시장 원리로 보면 자연스럽다. 영화에서 조조할인을 하고, 상점에서 마감세일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런 확률 변동 관련 내용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전부 공개했기 때문이다. 일본온라인게임협회(JOGA)가 경제산업성과 협상해서 자율 규제로 약속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실제로 실현하는 사례가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선 변동 확률이라 확률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용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불만이면 게임을 안 하거나 다른 게임을 하면 되지 않나.
"게이머 입장에선 그게 쉽게 안 된다. 록인(Lock-In) 효과가 있다. 하나의 게임에 투입한 시간과 자산이 있기 때문에 쉽게 못 떠난다. 새 게임을 하려면 빈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또 하나는 네트워크 효과다. 가상 공간이지만 같은 게임을 오래도록 한 이용자들 끼리는 더 끈끈한 인간 관계로 엮여 있다. 함께 전쟁을 한 동료가 있는데 그걸 다 버리고 떠나기 쉽지 않다.
게임사도 이걸 알고 있다. 그래서 게이머들이 그동안 산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적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런 전례들이 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용자들의 문제 제기를 귀찮게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게임업계가) 역사가 짧은 측면도 있고, 무엇보다 게임사가 자신들의 게임을 게이머들과 함께 키워냈다는 인식이 좀 약하다. 문제 제기를 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용자들이 고마운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말없이 아이디를 삭제하고 사라져 버리는 이용자다. 정말 싫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트럭 시위가 대표하는 이번 문제제기는 다른가.
"다르다. 기존에는 사이트 내에서 GM(게임 운영자, 국내 온라인 게임에선 소비자 대응 담당을 가리킴)과 대화하거나, 언론에 하소연하는 정도였다. 이번 트럭 시위는 선거 캠페인이나 아파트 광고 홍보할 때 쓰는 방식이다. 당연히 비용이 들고 시간이 든다.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금해서 불만을 표출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론도 이번 트럭 시위에 우호적이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들판에 휘발유처럼 뿌려져 있었던 것인데, 트럭 시위가 거기에 불을 붙인 것이다. 쌓여있던 불만이 한번에 폭발하면서, 시위를 지지하는 의견이 매우 많다.
만약 이런 호응이 없었다면 아무리 트럭 시위라도 가십거리나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났을 텐데, 여러 게임의 이용자들이 공감하면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문제제기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더 커져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영향 속에서 지난해 국내 게임사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이용자들은 그 매출이 확률형 아이템을 팔아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데, 게임사들이 성의없이 대응을 하는 것을 보고 허탈함과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이 지속되자, 국내 주요 게임사 '3N' 중 하나인 넥슨은 5일 이정헌 대표가 공개 사과하고, 그간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확률형 강화' 등의 확률도 전면 실시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두 회사인 넷마블과 엔씨소프트 등도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다.
위정현 교수가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트럭 시위로 폭발한 게이머들의 요구 때문만은 아니다. 위 교수는 한국 게임사들의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판매가 우리 게임산업의 미래를 좀먹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걱정했다.
그는 한국의 게임업계가 지난해 전년 대비 2배 수준의 매출을 거뒀지만, 내부로는 '혁신'의 동력을 잃은 채 확률형 아이템과 기존 게임의 재활용 등에 안주해 '보수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10년 뒤 국내 시장마저 중국 게임사들에 점령될 것"이라며 격정을 토로했다.
-지난 한 해 게임업계를 산업적 측면에서 돌아본다면.
"겉으로 봐서는 높은 매출을 찍었지만, 속으론 장기 비전을 내놓지 못한 채 급격히 보수화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과 더불어 기존에 흥행한 지적재산권(IP) 게임을 재활용하는 데 안주하고 있다. 리니지, 라그나로크,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등 컴퓨터(PC) 환경에서 가동된 인기 게임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옮겨갔다.
물론 그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훌륭한 성공 모델이고,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그것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게임 중에 최근 국제적 성공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인데 출시 4년이 넘었다. 새로운 게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기존 IP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산업 성숙기의 모습이다. 1990년대 일본의 게임업계가 그랬다. 시리즈화를 하면서 신작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일본은 자기들이 강하던 콘솔게임 개발에 치중해 온라인의 잠재력을 무시했다가, 2000년대에 온라인 게임 시장을 거의 통째로 한국에 내줬다.
지금 우리 기업들도 비슷한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늦었던 것이 중국 게임사들이 영향력을 키우는 기회를 열어줬다. 온라인 게임에서 한국의 개발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현재 모바일 시장에서는 우리나라 게임의 개발 능력이 (중국에) 밀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도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는 것이 어떻게 게임 회사의 '보수화'를 가져오나.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쉽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게 한다. 모바일 게임에서 아이템 과금 이용자는 평균 4.6%고, 그 가운데 소위 '헤비 과금러'라고 불리는, 게임사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큰손' 소비자는 1%가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이 몇 백에서 몇 천만원씩 돈을 쓴다. 게임 산업체들이 보수화되면서 과금을 많이 하는 핵심 이용자들만의 눈치를 보고, 새 게이머를 끌어들이려는 노력과 연구는 게을리하고 있다.
지금 국내에서도 인기가 제일 많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 같은 게임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 부분이 비즈니스의 핵심이 아니다. 여러 수익원의 하나일 뿐이다.
세계 주요 시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 일본 시장 분위기를 보면 확률형 아이템이 강하게 들어간 게임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강하다. 시간을 들이고 실력으로 승부가 나는 것을 중시한다.
반면 한국 게임업체들은 확률형 아이템 등으로 국내 게이머들로부터 수익을 쥐어짜고 있다. 확실한 수익처로 삼고 있다. 그렇게 게임사들이 안심하면서 해외로 나가려는 노력을 잘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가고 있는 중국의 게임이 세계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중국 게임산업이 그렇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나.
"최근 게임업계의 화젯거리 중 하나가 중국 게임개발사 '미호요'가 내놓은 게임 '원신'이다. 최초 공개 당시 일본의 유명 게임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노골적으로 베꼈다고 비판을 받았다. 해당 개발사 대표조차 솔직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힐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북미에서 구글 안드로이드 온라인 상점 매출 1위를 확보하고, 전 세계 매출이 조 단위로 나오는 등 대성공했다. 베끼긴 베꼈는데, 콘솔(게임 전용 기기)에서나 가능하던 수준의 게임을 스마트폰에서까지 구현에 성공했다는 점이 이목을 끌었고, 비즈니스 측면에서 충분한 이익을 얻으면서도 이용자들의 높은 지지와 충성을 잡는 데 성공했다.
원신을 보고 충격을 받아 "우린 이렇게 못한다"고 탄식하는 한국 개발자도 있었다. 그만큼 중국 게임사가 개발력이 올라왔고, 신규 투자도 많이 한다는 얘기다. 사실 LOL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도 중국 텐센트의 자회사다. 지분 100% 보유다. 이젠 실질적으로 중국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라면 10년 뒤에 중국 업계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한국 게임사들은 게임 개발보다 핀테크에 진출한다거나(넥슨), 정수기 업체를 인수하는 등(넷마블의 코웨이 인수를 말함) 게임과 동떨어진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텐센트가 한국 게임사를 인수한다는 설이 돌았다. 그러자마자 증시에서 온갖 게임사 주가가 올랐다. 심지어 주요 게임사 내에서조차 "우리를 사주지 않을까"라는 기대섞인 말이 돌 정도였다. 이게 업계에서 나올 정상적 이야기인가."
위정현 교수는 일찍이 2001년 무렵부터 게임 시장에 관심을 가진 원로 학자다. 온라인게임을 금속활자, 거북선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발명품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디지털망이 깔리고 '게임 인프라'가 형성된 2000년대 초, '어른'들은 PC방에 모인 청년들을 보고 '게임 중독'을 걱정했다.
하지만 위 교수는 온라인 게임에서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을 보고, 산업과 문화로서 게임의 가능성에 주목해 연구에 매달렸다고 했다. 게임을 통해 청년들이 사회의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고, 꼭 필요로 하는 지식을 습득하는 등, 성장과 학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실제로 게임을 이용한 학습의 가능성을 실험해 좋은 성과를 얻은 적도 있었다.
위 교수의 노력은 큰 메아리를 얻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게임은 학부모의 골치를 썩이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2019년까지도 지속되면서, 위 교수가 업계와 함께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이를 막아선 일도 있었다.
위 교수는 힘주어 말했다. "PC방에 모여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스타크래프트 세대'가 지금 성인으로서 무슨 문제를 일으킨 게 있느냐. 오히려 이 사회의 중추를 맡고 있다."
-여전히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등의 움직임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선 게임은 급이 낮은 문화로 취급되고 있다.
"문화로서 게임의 가치를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발생한 긴장감을 완화하고, 사람들끼리 교류하기 위한 수단으로 게임을 지목하면서 'Play Apart Together(떨어져서 함께 게임하자)'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앞서 WHO가 게임이용장애라는 질병 코드를 도입하려고 했던 상황에 비하면 태도가 크게 바뀐 것이고, 사회적 역할을 인정한 셈이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는 학부모를 중심으로 아직도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실 2019년에 있었던, '게임 과몰입'을 질병화해 법안에 넣으려는 의사 집단과 게임산업 및 학계의 분쟁이 올해 4, 5월쯤 또 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게임의 부정적 요소들이 크게 강조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좋은 점들을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부정적 요소들은 없애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바로 지금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임의 긍정적 요소를 꼽아준다면.
"게임은 이미 청소년 문화다. 게임을 통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청소년들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은 원하지 않아도 협업을 해야 하고, 협동심을 기를 수 있다. 또 판단력도 높일 수 있다.
또 이미 많은 게이머들이 성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는 2010년대까지 PC방 열풍을 이어갔다. 당시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 하기 위해 PC방에서 살다시피한 청년들이 지금 30대~40대가 됐다.
'스타크래프트 세대'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데 이들이 게임 중독에 빠진 문제아 집단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반 기업이라면 팀장급을 맡을 나이인데, 이들이 문제를 일으켰단 이야기를 못 들어봤다. 우리나라 IT(정보기술) 기업만 보더라도 중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이 스타크래프트 세대다."
-학업과 게임을 접목하려는 시도로 연구를 진행하신 적이 있다. 코로나 시대의 학생들이 집에 머물면서 원격 수업을 하다 보니 학업 성취가 낮아진다는 우려가 있는데, 게임을 활용하면 학습 욕구를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게임과 학습이 결합하면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실제로 관련해서 연구도 하고 정부와 협업도 시도했지만 본격 도입은 되지 않았다. 원래는 전국 모든 학교와 학생에게 공통된 게임학습 시스템을 마련해 공급하는 것이 목표였다. 실현됐다면 지금 같은 상황(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학업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