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빈자리, e커머스·식자재마트가 차지... 전통시장 어쩌나

입력
2021.03.02 20:10
16면
대형마트 vs 전통시장 경쟁 옛말
급성장 식자재마트가 더 큰 위협
"전통시장과 e커머스 협업이 중요"

2012년 3월 시작된 대형마트 월 2회 강제휴무 및 심야영업 금지의 취지는 '전통시장 보호'였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지만 대부분의 전통시장에선 여전히 "먹고 살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대형마트에서 이탈한 소비자가 전자상거래(e커머스)나 규제를 받지 않는 개인대형슈퍼마켓(식자재마트)으로 이동한 게 전통시장이 부활하지 못한 이유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색있는 먹거리 등 상품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e커머스 플랫폼과의 협업이 더 현실적인 전통시장 지원책이란 조언도 나온다.

2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유통업 매출이 43.3% 증가하는 사이 전통시장, 골목상권 등 전문소매점 매출 증가 폭은 28%에 그쳤다. 편의점(135.7%) 등에 비해 한참 낮고 슈퍼마켓(29.9%)에도 못 미친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 매출만 유일하게 역성장(14%)했다. 규제 도입 후 대형마트 수익이 줄었어도 애초 목적인 전통시장 활성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e커머스로 옮겨간 소비자가 많고 오프라인 장보기 수요도 전통시장보다는 거주지 근처 식자재마트가 대거 흡수한 여파로 유통업계는 보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보다 덩치가 크고 대부분 주차장을 잘 갖춘 식자재마트는 365일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많다.

한국유통학회가 지난해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식자재마트의 위력을 입증한다. 2019년 기준 연매출 10억~50억원인 식자재마트는 2014년 대비 33.8%, 50억원 이상은 89.6% 증가했다. 학회 측은 "규제 사각지대가 식자재마트 같은 새 업태 성장을 촉진해 전통시장을 가던 사람들이 식자재 마트를 이용하면서 오히려 골목상권이 더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전통시장 살리기가 오프라인 유통점 규제보다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의 상생 노력에 달렸다는 현장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상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전통시장 매출은 전년보다 최대 80% 급감했지만 망원시장, 화곡본동시장, 영등포청과시장처럼 매출 감소폭이 적은 곳들도 있었다. 해당 시장에서만 살 수 있는 차별화 상품의 유무, 플랫폼 활용 능력이 희비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편정수 서울시상인연합회장은 "유명 먹거리가 있는 곳은 네이버, 쿠팡이츠, 배달의민족 등 배달 서비스를 활용해 코로나19에도 매출을 어느 정도 유지했다"면서 "대부분 고령인 시장상인의 배달 플랫폼 활용 역량을 키워주는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형마트를 소상공인을 위협하는 '갑'으로 보는 것 자체가 시대에 역행한다는 시각도 있다. 박종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e커머스가 대세인데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만 규제한다고 전통시장 소비가 살아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해외에서도 대형점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중소상인 보호에 초점을 두기보다 도시 관리와 주민 삶의 질이란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규제를 운영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공간의 장점을 살린다면 대형유통시설이 랜드마크 역할을 해 인근 상점까지 활성화시키는 공생관계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팀이 스타필드 하남점(2016년 9월 출점) 상권을 분석한 결과, 반경 10㎞ 이내 2만여 점포의 전년 대비 매출이 2016년 5.63%, 2017년 8.04%, 2018년 7.59%씩 늘었다. 연구팀은 "역외 소비자가 유입돼 하남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봤다"고 분석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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