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까지 치른 심수련(이지아)이 점을 어떻게 찍고 돌아올까.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폐인들이 몹시 애를 태우며 심수련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극강의 '마라맛 전개'를 우려낸 복병은 따로 있었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주단태(엄기준)의 심복인 양집사. 그는 지난 19일 시즌2 첫 방송에서 드레스를 갈기갈기 찢는 등 온갖 기행으로 '악의 화신'인 천서진(김소연)을 벌벌 떨게했고, 결국 주단태까지 궁지로 몰아넣었다.
양집사를 연기한 배우 김로사(46)는 시즌2 서막의 신스틸러였다. "절대 안 뺏겨!" 그의 굵고 낮은 목소리와 표독스러운 표정 연기를 땔감으로 극의 공포는 활활 타올랐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을 찾은 김로사는 "안 그래도 방송 끝나자마자 '진짜 너 죽은 거냐, 다시 안 사냐'며 지인들 전화가 새벽 두 시까지 와 잠을 못 잤다"며 웃었다.
양집사는 '펜트하우스'에서 미저리 같은 존재였다. 주단태에 그의 삶에 낀 곰팡이 취급을 당하면서도 사랑에 눈이 멀어 20년 동안 그의 곁에 머물고 악행을 도왔다.
그 광기를 위해 김로사는 1년 넘게 미저리처럼 살았다. 그 흔적은 배우의 휴대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로사가 보여준 사진엔 드라마 세트가 아닌 배우가 사는 실제방(강북구 번동)에 주단태와의 결혼 사진이 걸려있고, 그 옆에 '주단태 내 사랑' '넌 내 거야'라 적힌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지난해 2월, 드라마 첫 촬영 때 찍은 사진을 따로 뽑아 방에 붙여놨다고 한다. 양집사에 더 깊게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김로사는 "처음엔 도덕의 선을 어디까지 잡고 연기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며 "주단태의 비행을 모두 알면서 덮고 가는 맹목의 사랑 그 광기만 생각하고 집중하려 했다"고 말했다.
양집사는 시즌1과 시즌2 초반, 극의 미스터리를 이끄는 축이기도 했다. '펜트하우스' 탐정 놀이에 빠진 일부 시청자들은 양집사를 심수련을 죽인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했고, 온라인엔 '왼쪽 어깨에 나비문신을 한 주단태의 쌍둥이 친모가 양집사'란 추정이 쏟아졌다. "진짜 대나무 숲에 가서라도 너무 외치고 싶었어요. '저 아니에요'라고요, 하하하."
'펜트하우스'엔 어떻게 입성하게 됐을까. 2년 전 겨울, 김로사는 드라마 오디션 사흘을 앞두고 급하게 연락을 받았다. 준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그간 작품이 뚝 끊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절박함을 알아본 건 주동민 PD였다.
"어떤 지원자분이 오디션에서 준비가 덜 돼 못하게 된 어린아이 역도 제가 했거든요. 늘 어려웠지만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연극 배우 힘들어 돈 좀 벌고 싶다'고 하고 오디션장 나가는 데 주PD님이 그러더라고요. '5년 안에 이정은 같은 배우가 될테니까 버티세요'라고." 붉게 달아오른 배우의 왼쪽 눈 아래로 눈물이 흘렀다.
대학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한 김로사는 1998년 극단 여행자에 입단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한국 전통 연희 양식으로 재구성해 유명한 '한여름 밤의 꿈'을 비롯해 '코끼리와 나' 등에 출연하며 무대에서 연기의 살을 찌웠다. 그런 그는 영화 '카트'(2014)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워낙 비중이 작아 포털사이트 출연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세상은 당시 그를 기억하지 않았지만, 배우는 주저앉지 않았다. "'카트'때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40대 배우 20명 정도가 '이미지 단역'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다들 뜨거웠죠. 늘 관객과 시청자분들이 몰라보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배우가 양집사였어?' 이렇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