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너 때문에 뒷 사람들 전부 다 망쳤다." "니가 코스 다 말아먹었다."
지난해 경기 파주의 한 골프장에서 일하던 캐디 배모(27)씨가 상사로부터 들은 말들이다. 이런 모욕과 망신은 대부분 경기 중 무전을 통해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상사의 '갑질'에 힘들어하던 배씨는 결국 지난해 9월 골프장을 그만두던 날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파주 캐디 사망 사건'이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캐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로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적용은 할 수 없다고 유족에게 통보해, 법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고용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고양지청은 지난 9일 배씨의 유족에게 보낸 사건 진정 처리 결과서에 "(가해 상사) A씨가 배씨에게 행한 일부 행위 자체는 직장내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고인은 캐디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아니해 근로기준법상 직장내괴롭힘 관련 규정의 직접적인 적용이 곤란하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사용자에게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적절한 조치 등을 시정지시했다"고 덧붙였다.
배씨는 2019년 골프장에 입사한 뒤 '캡틴'으로 불리는 상사의 괴롭힘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유족들은 주장한다. 배씨의 직장 생활은 지난해 8월 16일 쓴 일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일기에 "또 다시 주눅 들었다. 다른 회사로 옮겨야 하나 수없이 고민이 된 날이다. 캡틴은 내가 상처받는 거에 대해 생각 안 하고 나만 보면 물어 뜯으려고 안달인 거 같아"라고 적었다.
일기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며칠 뒤 또 다시 상사로부터 심한 말을 들은 배씨는 캐디들이 경기 일정을 통보 받는 인터넷 카페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렸다. 그간의 부당함을 토로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글은 20분 만에 삭제됐고 배씨는 카페에서 강제로 퇴장당했다. 카페에서 강퇴되면 경기 배치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해고였다. 지난해 9월 14일 기숙사에서 짐을 싸서 나온 배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처럼 명백한 직장내괴롭힘이 발생해도 너무 많은 사람이 법망을 빠져 나간다고 지적한다. 심준형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고용부가 배씨를 노동자가 아니라고 단정한 이상, 회사가 조사를 하지 않아도 현행법상 이를 제재할 방법이 전혀 없다"며 "배씨 같은 특고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직장내괴롭힘 법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금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계약 형태에 국한돼 있다"며 "특고, 플랫폼 노동자와 같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