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부터 우리 동네서 신종 코로나 백신이 생산되고 있다고요?”
18일 강원 춘천 석사동 주택가에서 만난 김모(70)씨는 춘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서는 누가 1호 백신 접종자가 될지, 그 자신은 언제 접종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전날 국내서 600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백신에 대한 갈증은 더 없이 컸던 터다.
김씨가 사는 곳 바로 옆, 거두농공단지 내 한 공장에서는 신종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V’ 생산이 한창이다. 러시아가 개발한 백신으로, 이곳 입주기업인 한국코러스가 1억5,000만도스(1도스는 1회 접종분) 수탁 생산 계약을 맺고 지난해 12월 생산에 들어갔다.
춘천에서 백신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민들의 허탈감은 더했다. 공단 인근 주민 서모(42)씨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며 “품질 문제는 떠나 우리 국민은 언제쯤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춘천에서의 백신 생산 사실은 지난 15일 최문순 강원지사의 러시아언론 인터뷰로 널리 알려졌다. 최 지사는 당시 “스푸트니크 백신을 북한에 지원하면,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러시아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ㆍ미생물학센터 연구팀이 러시아 국부 직접투자펀드(RDIF)의 투자를 받아 지난해 8월 개발한 스푸트니크V 백신은 초기 안정성 문제가 제기됐지만, 이후 국제 의학 학술지 ‘랜싯’에 이 백신의 효능이 91.6%(60세 이상 효능은 91.8%)라는 임상 결과가 실리면서 재평가받은 상황.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지난 8일 이 백신의 도입 검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현재 한국을 ‘스푸트니크V 핵심 생산국’으로 지정한 러시아는 GC녹십자와 바이넥스, 이수앱지스 등과 위탁생산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푸트니크V는 아직까지 치명적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격도 화이자ㆍ모더나 백신의 절반 수준인데다, 영하 18도에서 보관이 가능해 화이자 백신처럼 영하 70도 이하 초저온 유통도 필요 없다.
그러나 춘천에서 생산되는 백신은 전량 중동에서 수출된다. 국내에서 접종할 백신은 경북 안동에서 생산된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위탁 생산하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이 24일부터 안동공장에서 출하돼 통합물류센터로 배송된다. 이어 25일 요양병원과 시설 등 접종기관에서 필요한 분량만큼 소분해 유통된다. 본격적인 접종은 26일이다.
전 세계에선 78개국이 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인 한국은 여기에 끼지 못한 사실에 한 춘천시민은 “원천 기술이 없으니 코앞에서 백신을 만들어도 정작 접종은 남의 이야기”라며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원섭 강원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러시아의 백신 기술수준이 높기는 하지만 초기 충분한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아 정부가 선제적인 물량 확보에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