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 쓰지만, 삶이라 읽어야 하는 비망록’.
김범석(45)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그의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흐름출판)를 이렇게 표현했다. “18년 동안 대형병원 의사로 근무하면서 정말 많은 죽음을 봐왔지요. 어떤 죽음은 저를 무겁게 짓눌렀고, 몹시 가슴 아프게 했고, 또 한편으론 겸허하게 만들었죠. 그럴 때마다 이 죽음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게 너무 안타까웠거든요. 환자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과 이야기를 반추하고 되새김으로써 남겨진 사람들이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에 책을 내게 됐습니다.”
김 교수의 진료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은 완치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이다. 삶보다 죽음에 가까워진 이들에게 한국 병원이 건네는 도움은 주로 항암 치료에 집중된다. 환자의 고통은 배가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항암 치료에 매달린다. 조금이라도 더 삶의 끈을 부여잡고 싶은 간절한 희망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모든 말기암 환자들이 항암 치료에만 목매는 현재의 의료시스템에 부정적이다. ‘좋은 죽음’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항암 치료가 모두에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도 ‘정답 사회’만 좇다 보니 항암 치료도 마찬가지로 ‘남들이 하는 게 최선이야’라고 생각하고 그걸 따라가기 바빠요. 남들의 최선과 정답이 나에겐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죠.” 항암치료에만 높은 수익을 안기는 국가의료시스템도 문제라고 그는 꼬집었다.
김 교수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무엇일까. “좋은 죽음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삶”이란 답이 돌아왔다. 종양내과 의사는 항암 치료를 통해 암이 커지지 않도록 6개월이면 6개월, 1년이면 1년 정해진 시간을 늦추는 사람이다. 김 교수는 관점을 달리 봤다. “남은 시간이 한달 밖에 안 되지만, 한 달을 두 달처럼 쓰면 한 달을 버는 효과가 생기잖아요. 시간의 양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시간의 질을 늘려 삶의 소소한 의미를 찾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환자들에게 특별한 숙제를 많이 내준다. ‘다음 번 치료 전까지 가족들이랑 바닷가에 가서 해산물 요리를 먹고 올 것’ 등 되도록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많이 남기라고 부탁한다. 그 여행이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된 환자들도 적지 않다.
죽음은 태어났다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 김 교수 역시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고 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제 삶을 계속 정리하게 돼요. 생활도 간소해지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기준이 생기죠. 환자분들마다 언제쯤 죽을 것 같으냐고 질문하지만, 죽음은 예측이란 게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언제’ 죽는지가 아닌 ‘어떻게’ 살지를 고민한다면 더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