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하며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한다. SNS에도 아이들의 엉뚱하고 창조적인 말들을 대견해하는 부모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말들은 우리가 잡아 놓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다. 아이의 그 귀엽던 미소와 웃음소리가 시간과 함께 다 사라져버리듯이. 그리하여 어느 날부터 아이들은 어른들과 똑같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를 무서운 중2라고 부른다.
애지니는 아직은 재미있는 말을 하는 유쾌한 아이다. 애지니 아빠는 딸아이의 말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 말을 종이 위로 옮겨 놓았다. 그리하여 3살부터 11살까지 55개의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 애지니의 말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애지니가 태어나게 하고, 애지니 아빠가 키워낸 말들이 책 속에서 웅성대고 있다.
그림작가 이강훈은 이 말이 태어날 때의 기쁨과 웃음을 독자 앞에 무대처럼 펼쳐 놓는다. 말들이 그림이 되는 순간, 독자들은 애지니 아빠가 딸의 이야기를 받아 적던 그 순간의 웃음을 함께 웃을 수 있다. 그리고 이강훈의 그림 속에서 애지니 아빠가 단지 아이 말의 관찰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항상 아이 옆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의 창조적인 순간은 아이 옆에 부모가 함께한다면, 매일 일어나는 기적이다.
<글쓴이>
이 책의 글을 쓴 애지니아빠는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며, 연극에 관한 글을 쓰고, 번역하며, 또 연극을 만드는 일을 한다. 글이든 말이든 혹은 말해지지 않은 것이든 간에 언어를 보고 듣고 쪼개고 상상하며 살고 있다. 연극과 놀이가 같은 말(play)인 것에 기뻐하면서 직업적 활동에 할애하는 시간 이상을 애지니와 함께 놀기를 원하지만, 점점 아빠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온갖 애교로 매달리고 있다.
<그린이>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이강훈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다양한 매체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틈틈이 달리거나 이야기를 쓴다. 400여 권의 단행본에 그림을 그렸고, 『도쿄 펄프픽션』, 『나의 지중해식 인사』 등을 쓰고 그렸다. 서울 어느 조용한 동네에서 말이 많은 고양이 두 마리와, 애지니 그림의 원래 모델이지만 말수가 적은 사람과 넷이서 함께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