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 가더라도 곱게는 못 갈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탄핵 위기까지 용케 피했으나, 의회는 이대로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사법당국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정조준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상원에서 탄핵이 부결된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역사상 최대 마녀사냥”이었다면서 기세등등했지만 진짜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상원에 송부한 탄핵안을 빈껍데기로 돌려받은 하원은 곧바로 다음 절차에 착수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15일 민주당 동료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지난달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2002년 9ㆍ11테러 당시 만들어졌던 9ㆍ11위원회를 모델로 삼아 성격과 활동 범위 등을 정할 예정이다.
하원 안에선 이미 초당적 지지를 받는 분위기다. 탄핵 부결 후에도 의회 난입 사태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빌 캐시디 상원의원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완전히 조사해야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을 것”이라며 독립 조사위 설치를 지지했다.
조사위가 출범하려면 법부터 제정돼야 한다. AP통신은 “법적 근거를 통해 정부 재정을 지원받게 되면 조사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면서도 “조사위가 당파적 분열을 심화시키거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법 의제를 흐릴 위험도 있다”고 짚었다.
사법부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선거 사기 주장부터 개인 비리, 성추문까지 그야말로 ‘탈탈’ 털릴 일만 남았다. 이제 대통령 신분이 아니라서 법을 피할 방편도 마땅치 않다. 또 의회 침탈 폭거는 워싱턴 검찰과 연방 검찰이 양쪽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당시 사건으로 이미 200명 이상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법정에선 처벌 수위를 낮추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임을 주장하는 증언들이 쏟아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형국이다.
선거결과 뒤집기 시도와 관련해 조지아주(州) 검찰도 수사를 시작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브래드 래펜스퍼거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내 표를 찾아내라”고 강요한 사건과 지난해 12월 콥카운티 투표사기 의혹을 조사한 조사관에게 “사기를 찾아내면 국가적 영웅이 될 것”이라며 압력을 가한 사건 등이다. 풀턴카운티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조지아주 총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는지 수사하고 있다. 파니 윌리스 풀턴카운티 지방검사는 “법 위반자는 사회적ㆍ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기소될 것”이라며 엄정한 법 집행을 예고했다. 다음달엔 기소 여부를 정하는 대배심이 소집될 전망이다.
뉴욕에선 트럼프그룹의 보험 사기, 탈세 혐의 등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검찰이 납세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대통령 재임 기간엔 미뤄졌다. 하지만 이제 대통령도 아닌 만큼 연방대법원이 소환장 집행을 허용하면 수사에 상당한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들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2017년 대통령 취임식 당시 트럼프 소유 호텔에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을 초과 지불한 사건도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CNN방송은 “트럼프 재임 기간 지연됐던 여러 소송이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며 “더는 대통령의 방어 수단에 의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의 곤궁한 처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