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도 못보고 근본 없지만" 반전 '30호' 애매함의 기적

입력
2021.02.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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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


그는 가수지만 악보를 볼 줄 몰랐다. 스스로 "근본 없이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 세상과 유일한 소통창구였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방구석 음악인'이라 명패를 달았다. 청년의 주 무대는 13m²(4평)남짓의 원룸. 벽에 '월세 매달 2일'이라 적힌 메모지를 붙여 놓고 음악을 하던 그는 "이렇게 살다가는 후회하겠다 싶어 음악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으로 방문을 열고 나와"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지원했다.

독특하지만 "너무 낯설어"(심사위원 유희열) 경연 중반 똑 떨어질 뻔했던 '미운오리새끼'는 요즘 신드롬급 인기다. "장르가 30호"라 불리며 '싱어게인'에서 반전 드라마를 쓰며 우승한 이승윤(32)이다.


2012년 포크 밴드 따밴으로 데뷔해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오디션 스타는 주위의 환대가 어리둥절할 뿐이다. 16일 화상으로 만난 그는 "내가 이렇게 인맥이 넓은 줄 몰랐는데 '이 정도면 출마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분들에게서 축하 연락이 왔다"며 웃었다.

이승윤의 무대는 늘 파격이었다. 그는 이효리의 힙합 댄스곡 '치티치티뱅뱅'을 주술 외우듯 부르며 록 음악으로 확 바꿨고, 산울림의 록음악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리듬앤블루스(R&B)식으로 변주했다. 여러 장르의 자연스러운 소화, 그게 바로 이승윤의 장점이었다. 그의 무기는 날카로우면서도 어둡고 때론 끈적이는, 한국에선 좀처럼 듣지 못했던 이국적 목소리로 더욱 빛을 발했다.

이승윤은 "충분히 예술적이지도 그렇다고 대중적이지도 않고, 록도 포크도 아닌 그래서 애매한 내가 살아 남는 게 요행" 같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시청자는 정반대였다. 이승윤이 상처처럼 뼈 아파했던 음악의 애매함을 되레 경계를 지운 혼종의 열매처럼 즐겼다. 이승윤은 "내 노래로 다른 분들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지금부터 난 정통 댄스 가수"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방송에서 "재능있는 분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내 재능"이라며 자신을 "배 아픈 가수"라 소개한 이승윤의 얼굴에선 이날 그늘을 찾을 수 없었다.


이승윤은 한국 기독교 선교 100주년 기념 담임 목회자 등을 지낸 이재철 목사의 아들이고, 1960~70년대 청초한 이미지로 사랑받은 원로 배우 고은아의 조카다. 이승윤은 방송에서 "계속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어 자신감이 없다"고 고백했지만, 무대에선 대나무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심사위원을 패배자로 만들겠다" "존재의 의의를 구체화해야겠다"며 간택 받아야 살아 남는 경연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나'를 찾는 데 주력했다. 불안한 미래에도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 분투한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이승윤의 당당함에 시청자는 더욱 열광했다. 이승윤은 정홍일(45), 이무진(21) 등 톱10 진출자들과 함께 내달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공연에 선다. 하지만 그는 오디션 스타로서 치러야 할 세상의 빠른 속도에 오히려 한 발 물러서려했다.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제가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을 지를 먼저 살펴보려고요. 출연 전이나 후나 마음가짐은 같아요. 다만,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람마다 필요한 음악이 다를 수 있죠.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닿을지 고민하고, 그런 노래를 만들려고요."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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