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값 폭등과 재개발 열풍을 타고 들썩이던 빌라 시장이 정부의 '2·4 주택 공급대책' 발표 후 정중동 상태로 돌아섰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지역의 빌라를 섣불리 샀다가 나중에 공공 주도 개발 사업지로 묶이면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을 당할 위험이 있는 탓이다. 정부는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지난 4일 이후 취득한 주택은 추후 해당 지역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지구로 지정되면 현금청산하기로 했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명확한 내용이 2ㆍ4 대책에 담겨있지 않아 재개발 사업 지역 일대 빌라의 주택 거래가 뚝 끊겼다. 서울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감정가에 기초한 현금청산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거래가 아예 안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빌라 매수에 관심을 두고 있던 A씨도 “지금 당장 사는 것보다 당분간은 흘러가는 시장 분위기를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법률과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현금 청산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대책 준비를 할 때 이미 법률 검토를 거쳐 위헌성이 없고 법원 판례에도 배치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반대 여론이 많다고 무조건 따라가야 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정은 3월 중 2·4 대책 지원을 위한 후속 입법을 시도할 계획이다.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 빌라 시장은 한달 사이에 온탕에서 냉탕이 됐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자랑하는 아파트에 밀려 그동안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빌라는 지난해 집값 과열 양상 속에 수요자의 관심을 받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아파트값과 전세난을 감당하지 못한 실수요자들이 빌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8ㆍ4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 공공 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에 따른 기대감도 더해져 빌라 시장은 들썩였다.
지난달 빌라 가격 상승률은 0.41%로 2009년 10월(0.67%) 이후 11년 3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서울의 1월 부동산 거래량(10일 기준) 중 빌라(4,178건)가 아파트(3,943건)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시장에선 빌라 침체기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역세권 등 수익성이 좋은 지역은 이미 민간 개발을 추진 중이고 공공 주도로 개발을 한다 해도 이해관계가 다른 토지주들의 3분의 2 동의를 받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이유다.
이미 빌라 수요가 공공 개발 가능성이 높은 곳을 피해 민간 개발을 추진하는 지역으로 향하는 '풍선 효과' 조짐도 보이고 있다. 서울 구로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민간 재개발을 추진하는 곳의 매수 가격이 다른 곳보다 비싸도 물량은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한시적(3년간)으로 공공 주도 개발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보다 5~10년 이후를 바라보고 빌라 수요가 향하는 풍선 효과가 가시화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