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문양에서 착안, 세계 미용대회 4연패 달성했죠"

입력
2021.02.09 23:38
권기형 미용 명인



"한국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내는 방법?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지. 한국이 출전하지 않으면 가능하다네."

미용계의 세계올림픽으로 통하는 OMC(Organization Mondial Coiffure·세계이미용협회) 헤어월드챔피언십대회 참가를 앞두고 모 국가의 코치가 OMC 회장에게 "한국에게 패배하지 않을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그에게 들은 대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팀은 20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OMC헤어월드챔피언십 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한 이후로, 2016년 서울, 2018 프랑스 파리, 20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MC헤어월드챔피업십에서 종합 1위 성적을 거두면서 4연패를 달성했다. OMC헤어월드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미용경진대회로 1947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1회 대회가 개최된 이래 2년마다 회원국을 순회하며 치러졌는데, 2017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2017년 대회엔 한국팀이 불참했다.

K팝 이상의 실력으로 유럽의 원조 '가위손'들을 압살하다시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빛나는 선전이 있기까지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권기형(59) 명인이다. 2001년 오스트리아 유럽 비엔나 챔피업십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이후 2002년 OMC헤어월드챔피언십에서 4강에 진입하는 등 국가대표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13년부터는 외국 코치를 배제하고 권 명인이 코치를 맡아 헤어월드에서 우수한 성과를 이뤘다.

지금은 한국팀의 위상이 어마어마하지만 20여년에는 우리나라는 정보의 부족으로 헤어월드에서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웠다. 2001년 권 명인은 이듬해에 열리는 OMC헤어월드챔피언십을 준비하면서 독일의 유명 코치를 찾아갔다. 그는 한국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코치로 모시고 싶다고? 너희 나라엔 내가 과분해."

2001년 오스트리아 유럽 비엔나 챔피업십에 나서 20위 안에 들면 코치를 맡아주겠다고 했다. 유럽 대회이긴 하지만 OMC가 주최하는 만큼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대회였고 참가 선수도 61개국에서 160여명이 몰려왔다. 권 명인은 국제대회 참가가 처음이었으나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콧대 높은 독일인 코치를 초빙해 도전한 2002년 OMC헤어월드챔피언십에서 4강에 들었다. 이 외에도 같은 해에 독일 룸베그 챔피언, 프랑스 파리 유럽 챔피언을 따내면서 2004년 한국을 빛낸 미용인에 선정됐다. 권 명인은 선수로, 지도자로 쌓은 업적이 인정돼 세계미용협회(OMC)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명예의 전당에는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 윈느와 요하인볼프도 입성해 있다.




엉덩이를 툭툭 치던 여자 손님들

"정말 미용사를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국제무대에서의 존재감도 독보적이었지만, 한국에서 처음 가위를 잡을 때의 존재감도 그에 못지 않았다. 그가 미용을 시작하던 시기 미용학원에 등록한 남학생은 권 명인을 포함해 2명뿐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을 보면 더더욱 뜻밖의 도전이었다. 권 명인의 집은 유교적 가풍이 드센 집안으로 미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극구 반대했다. 아버지는 지역 유림회에서 활동하는 분이었다. 속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왜 저러실까, 했는데 기술을 배워 세상에 나와보니 ‘아버지 말씀이 100번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용실 문을 열자마자 '엄마야!'하고는 밖으로 후다닥 나가버리는 분도 있었어요.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이 유리벽 앞에 서서 안을 힐금힐금 쳐다보는 분도 있었구요. 남자 미용사가 귀하던 시절이었죠."

성추행도 일상다반사였다. 주로 업소에 출근하는 여성들이었다. 머리를 만지고 있는 권 명인의 엉덩이를 더듬거나 꼬집기 일쑤였다. 권 명인은 주눅 들지 않기 위해 더 당당하고 쾌활하게 행동했다. 점차 그를 좋아하는 손님들이 늘었고, 실력도 늘었다. 두 달 만에 실력이 직속 선배를 능가하면서 월급이 배로 올랐다. 미용실을 그만둘 즈음에는 오히려 원장을 가르칠 정도가 됐다. 주변에서 "손재주는 타고 났다"는 말을 들었다.

"타고난 게 맞아요. 아버지가 대목장이셨거든요. 돌과 흙도 쌓지만, 나무도 다듬고 손기술이 필요한 작업이 많잖아요. 손재주가 대물림 된 것 같습니다."

타고난 재능에 적극적인 성격,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친화력 덕분에 미용계에서 점점 이름이 높아졌다. 1998년 권 명인의 인생의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우리나라 잠실에서 헤어월드챔피업십이 열렸다. 전국의 미용인들이 모두 잠실에 모였고 권 명인 역시 관중석에서 대회를 지켜봤다. 그곳에서 권 명인은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리게 됐다.

"대회를 보니까 미용이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더군요. 우리나라 헤어 미용을 예술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음에서 뜨거운 욕망이 솟구쳤습니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험이 있는 미용사를 물색했다. 그렇게 김동분 선생을 만났다. 권 명인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소개했다. 스승의 도움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인 전국미용경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년 뒤 꿈에 그리던 헤어월드챔피언십에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김동분 선생과의 유대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미용계에서 끈끈하기로 소문난 스승과 제자다. 2014년에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하는 S/S 트렌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내면서 생각이 달랐던 적은 있었지만, 그로 인해 부딪혔던 적은 없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축구도 4강, 미용인도 4강, 잊을 수 없는 2002년

"1998년에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헤어 미용에 대한 위상이 높아지긴 했지만, 유럽과 비교하면 기술과 정보 모두 턱없이 부족했어요.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죠."

그때 그 자부심이 가득 찬 독일인 코치를 만났다. 그의 코치를 받기 위해 참가한 유럽 챔피언십에서도 잊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 대회는 테크니컬 부문와 패션부문으로 나뉘어 이뤄졌고, 두 부문 모두 권 명인이 출전했다. 패션부문에선 쉬뇽롱헤어 업스타일이 과제도 주어졌는데, 권 명인이 해본 적이 없는, 심지어 본 적도 없는 스타일이었다. 김동분 선생도 전혀 모르는 스타일링이었다. 쉬뇽롱헤어 업스타일을 한 모델의 사진 한 장을 구할 수 있었다. 사진만을 보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스타일링을 해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지에서 모델을 구하려고 했는데 한국팀에 오겠다는 모델이 없었다. 대회 하루 전까지도 모델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권 명인과 함께 대회에 간 당시 강경남 중앙회장이 "답답해서 안 되겠다"면서 인근의 성당에 갔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회장 옆에는 외국 여성이 한 명 서 있었다. 성당에서 긴 머리 여인을 우연히 발견하고 사정사정한 끝에 모델로 섭외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처음 해보는 스타일링에 연습도 해보지 않은 모델을 데리고 대회장에 도착했다. 심사가 시작되자 권 명인의 모델에게 심사위원들이 몰렸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모델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물었다.

"쉬뇽롱헤어 업스타일은 오직 모델의 머리카락만 가지고 해야 하는데 다른 머리를 붙인 거 아닌가요?"

다른 머리를 붙이면 실격이었다. 권 명인은 아니라고 답했고, 심사위원들은 그래도 의심스러워하며 무대 뒤에서 머리를 풀어보라고 했다. 심사가 모두 끝나고 시상식만이 남았다. 그 독일인 코치가 지도한 선수가 3등에 호명됐다. 스승으로 점찍은 '고수'가 지도한 선수가 3등을 했는데, 한국팀은 어림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단 생각으로 낙담하고 있는데 갑자기 권기형이라는 이름이 들렸다. 2등상을 받은 것이었다.

"한국팀이 유럽 챔피업십 대회에서 수상한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맨땅에 헤딩해서 얻어낸 결과라서 너무 좋았죠."

독일 프랑크푸르트 헤어월드챔피업십에 독일인 코치를 우리나라 코치로 데려올 수 있었다. 2002년에는 수많은 세계 대회에서 수상을 휩쓸었다. 헤어월드컵에서 헤어바이나이트 부문 동상, 개인종합 3위를 거뒀다. 2002 헤어월드에서 4강에 들었으며, 아시아대륙권에서는 1등이었다. 프랑스 파리 세계미용경기대회, 독일 룸베그 국제미용경기대회에서도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이 즈음, 프랑스에서는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권 명인은 "내 실력이 유럽에서 인정해줬단 사실에 뿌듯했지만 한국 미용의 발전이 우선이란 생각에 고사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그저 운이 좋아서 우승했을 뿐!"

"자네 같이 훌륭한 코치가 있는데 왜 외국 코치를 불러야 하겠는가."

권 명인은 2004년에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고 국가대표 선수 양성에 몰두했다. 지도자로 나선 이후 국가대표를 지도할 때 코치비를 받지 않았다. 젊은 인재들이 세계대회에 부담 없이 도전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미용협회에서는 항공료를 대고 권 명인이 무료로 지도에 나서면서 재능 있는 인재들이 대거 세계 대회에 도전할 수 있었다.

2016년에는 1998년 이어 두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헤어월드챔피업십을 개최하게 됐다. 20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챔피업십에서는 2년 후에 우리나라에서 열릴 월드 챔피업십의 홍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수상 욕심을 내려놓고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또 중앙회장은 이번 월드챔피업십부터는 독일 코치와 계약을 해제하고 권 명인 혼자 트레이너를 하라고 했다.

권 명인을 포함한 한국 대표팀들은 여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합에 임했다. 마음은 가벼웠지만 성적은 뜻밖에도 가볍지 않았다. 첫 번째 종목인 테크니컬 부문 1종목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1등부터 4등을 수상했다. 권 명인은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야?'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손에 땀이 났다. 제2종목에서도 우리 선수들이 1등부터 3등을 모두 휩쓸었다. 테크니컬 부문에서 세계 1위가 확정된 것이다.

참가에 의의를 둔 대회였지만, 막상 초반 성적이 치고 올라오자 욕심이 생겼다. 패션 부문에서도 1위를 하면 종합 1위였다. 패션 부문 대회 전날 선수들에게 마지막 연습을 시켜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완성을 못 하면 심사 자체를 못 받을 거였다. 권 명인은 작품을 수정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선수들이 잠든 사이 권 명인은 선수들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마지막 선수의 작품까지 수정하고 나니 부옇게 날이 새고 새었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방에 들어가 눕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제자들이 앞에 서 있었다.

"좀 더 가르쳐 주십시오."

결국 한숨도 자지 못 했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중앙회장이 화가 났다. 시간이 촉박해 작품 수정에 관해 선수단 단장인 미용협회 회장과 상의할 기회를 놓친 때문이었다. 그러나 권 명인의 자신감대로 패션 1종목에서 1~3등을 석권했다. 아쉽게도 2종목은 순위권에 들진 못했지만, 1종목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냈기 때문에 종합 챔피언은 한국이 차지했다. 그해 헤어월드에서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으로 테크니컬 부문과 패션 부문 모두에서 챔피언을 차지했다. 그때서야 회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돌아왔다. 권 명인도 감격스러운 마음에 힘이 절로 나 무거운 챔피언 트로피 2개를 동시에 번쩍 들어 올렸다. 평생 그렇게 무거운 걸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숨겨놓은 코치가 있는 거 아닌가?"

엉뚱한 곳에서 항의가 터져 나왔다. 유럽팀 코치 한 명이 권 명인에게 "외국 코치를 몰래 섭외한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그는 한국팀을 지도한 적이 있는 코치였다. 권 명인의 지도로 두 부문에서 챔피언을 따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한국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운은 한 번으로 끝난다"며 도발했다.

"아무리 선생님으로 모신 분이지만, 그런 말 들으면 오기가 생기죠. 다음 대회 준비를 시상식 끝난 날부터 했습니다. 운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다음 대회에도, 그다음 대회에서도 매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챔피언을 차지하자 '한국은 운으로 챔피언을 했다'는 말은 공중에 휘발해버렸다. 여기저기서 '한국의 미용 실력은 세계 최고다'는 찬사가 흘러나왔다.




작품의 아이디어는 모두 ‘한국 전통 문양’에서

"흔한 말이긴 한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입니다."

권 명인은 새로운 작품의 영감을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에서 얻는다. 20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헤어월드챔피업십 대회에서는 태극선의 태극무늬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창작했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태극무늬와 꽃이 어우러지도록 했다. 대한민국의 꽃을 피우자는 의미였다. 2016년에는 봉황새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창작했다. 전통과 창의성과 기술이 어우러진 작품에 세계가 감탄했다. 이제는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한국 작품을 모방하는 추세다.

창의성과 기술에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열정과 집중력도 큰 몫을 차지한다. 권 명인은 "우리나라 선수들은 유달리 악착같은 데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집중력에 비하면 다른 나라 선수들은 평소 모습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승리에 배고프다는 의미에서 '헝그리 정신'이 뛰어난 것 같아요. 한국인은 미용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늘 배고프잖아요, 하하!"

권 명인은 우리나라 미용계에 나눔의 꽃을 피우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에 우리나라의 위상을 떨치는 일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국내에 미용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기술과 재능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이것도 계기가 있다. 한번은 경남의 어느 도시에 강연을 갔다. 변변찮은 강의실도 없어서 매장이 넓은 미용실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기도 전에 원장들이 한 명씩 두 명씩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왜 강의에 집중하지 않지’하고 생각했는데, 강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보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았다. 차의 트렁크와 뒷좌석에 그 지역 농산물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때 또 눈물샘이 터졌죠. 너무 고맙더라고요. 이렇게 나를 기다려주고 또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어떻게 내가 가진 것을 베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인도에라도 부르기만 하면 가서 도와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연예인처럼 팬클럽도 있다. 2003년에 결성된 GHS (Global Hair Study)는 권 명인을 사랑하는 미용인들이 모인 단체다. 회원들은 권 명인의 꿈과 뜻을 지지하고, 권 명인은 회원들에게 자신이 쌓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대구에서 시작된 모임은 부산, 대전, 울산, 경주, 문경, 의성, 제주, 순천, 경기도로 확산되며 점차 몸집이 커졌다. 현재는 회원 수가 500여 명에 달한다.

권 명인은 "세계에 권기형이란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건, 우리나라 미용인들의 사랑과 격려 덕"이라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김채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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