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프로 반도 못 채우고 종방" 코로나로 스러지는 제작사

입력
2021.02.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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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1년... 드라마·예능·교양 외주제작사 실태 보니
10곳 중 7곳 제작 중단, 연기
"고정 인력 및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지원 필요"
프리랜서 10명 중 3명 "지난해 상반기 월소득 50만원 미만"


이병헌 출연, 노희경 극본으로 올 하반기 방송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드라마 '히어'는 촬영을 시작도 못 했다. 극의 줄기인 국제 비영리 민간단체 직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하는 모습을 찍으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제작진과 출연진의 발이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히어' 관계자는 7일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난감해했다. '히어'는 올 하반기 tvN 편성이 지난해 검토됐지만, 지난 4일 공식 발표된 'tvN 2021년 드라마' 목록에 없었다.

1년째 지속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드라마·예능·교양 외주제작사 10곳 중 7곳은 작품 제작을 중단하거나 연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치솟는 스타들의 몸값과 높아진 제작비로 몸살을 앓던 외주제작사가 코로나19로 인한 제작 차질로 삼중고를 겪으면서 폐업이나 휴업을 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낸 '2020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든 외주제작사 163곳 가운데 128곳(78.5%)이 코로나19로 지난해 제작 중단이나 연기를 경험했다.

그 결과, 외주 제작사들의 출혈이 커졌다.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외주제작 A사는 코로나19로 갑자기 방송사 편성이 취소돼 초기 제작에 투입된 비용을 모두 날렸다. 또 다른 B사는 외국인 출연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애초 계약 편수의 절반도 내보내지 못하고 조기 종방했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입국이 어려워진 탓이다.

B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광고 매출 급감으로 방송사가 외주 제작 물량을 줄이고 제작비를 삭감하는 분위기"라며 "주변에 폐업한 제작사가 많다"고 했다. 유명 예능 프로그램 외주제작사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촬영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기존 방송을 재편집해 방송하는 스페셜 방송을 여러 차례 내보냈는데 이런 방송은 제작사 입장에선 수익에 큰 도움이 안 된다"며 "작년 초 편성을 따낸 해외 다큐멘터리 전문 외주제작사 한 곳은 코로나19로 제작이 어려워 현재 휴업 상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처음 입국한 외국인들의 생생한 한국 체험기로 인기를 끈 케이블채널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는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출연진을 바꿨고, tvN은 유명인들이 해외에서 나가는 음식을 파는 '해외에서 먹힐까?' 시리즈를 지난해 '배달해서 먹힐까?'로 주제를 바꿔 내보냈다. 교양 프로그램 외주제작 C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갑작스러운 포맷 변경 요구가 많았다"며 "포맷 변경은 콘텐츠를 새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데 방송사에서 추가 투입 비용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관계자는 "방송외주제작 환경이 더 악화하기 전에 독립제작사의 고정인력 유지를 위한 정부의 인건비 지원과 독립제작사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콘진원이 방송 등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1,5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72명(약 30%)이 코로나19로 지난해 상반기 월소득이 50만원이 채 안 된 것으로 파악됐다. 2019년 상반기 월소득 50만원 미만 프리랜서 비율은 0.8%였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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