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의 고에너지가속장치(SCL2)에 이어 저에너지 가속장치(SCL3)도 연내 완공이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사업이 4년 이상 일정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당초 목표한 성능을 구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5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가속기 구축사업 점검단(총괄위원장 조무현 포스텍 명예교수·점검단)의 해당 사업 해외자문 내용에 따르면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사업단(사업단)의 연내 SCL3 빔 인출 완료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점검단은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핵물리국립연구소(INFN), 일본 고에너지가속연구소(KEK), 스웨덴 유럽파쇄중성자원(ESS)·웁살라대학교, 미국 에프림(FRIB) 등 해외 가속기 전문가들에게 라온 진행 상황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
해당 기관의 해외 자문위원 5명 가운데 4명은 사업단의 타임테이블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에프립 아마자키 박사는 “준비 상태를 평가해 달라고 했는데 제 대답은 준비라는 말의 정의에 달려있다. 미국 에프립이나 일본 J파크 가속기에서 준비의 의미는 빔 인출만 제외하고 모든 가속기 구성요소의 건설이 끝나 테스트가 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빔 인출은 모든 점검이 끝나고 승인까지 난 뒤에야 이뤄지는 것이고, 단계별 평가가 끝나야 비로소 준비가 됐는지 여부를 말할 수 있다. 빔에 의한 손상으로부터 가속기 부품을 보호하고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선 그것이 최선”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 대답은 ‘No’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INFN 알베르토 파크 박사도 가속기의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그는 “장기적인 QWR 가속모듈 성능 실험에선 ‘중대 문제없음’으로 보고됐지만 12시간 테스트에서 2개의 심각한 빔 손실 문제가 발생했다”며 “추론해보면 343개의 가속관에서 하루 1,372번의 오작동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가속기 이용자 시설에선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QWR은 저에너지 가속장치에 쓰이는 초전도 가속모듈 타입으로, 고에너지 가속장치에는 HWR이 쓰인다. 저에너지 가속장치에는 QWR 가속관 22기, 고에너지 가속장치에는 HWR 가속관 106기가 들어간다.
웁살라대 로저 루버 박사도 일정 상 SCL3 완공이 어렵다고 봤다. 그는 “29개의 HWR 가속 모듈 조립이 남아 있고, 이 가운데 28개는 6개월 내에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기한 내에 맞추려면 대략 일주일에 한 개씩 가속 모듈을 테스트해야 하는 셈이다. 이것도 한 한번의 우연이나 실패도 없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선형 가속기의 모든 부품이 테스트는 물론, 설치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빔 인출을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KEK 카코 에니지 박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올해 6월까지 HWR.QWR 가속 모듈 설치를 끝내고 10월에는 QWR 가속모듈의 빔 인출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이 스케줄이 진짜 합리적인 것이냐”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점검단은 앞서 지난 2일 과기정통부 등이 주최한 ‘중이온 가속기구축사업 추진방향 토론회’에서 SCL2 구축 가능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는 총괄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점검단 조무현 총괄위원장은 “사업기간 내 목표 달성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특히 SCL2는 사업기간 예측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 총괄위원장은 대책으로 중이온 가속기 구축을 저에너지구간과 고에너지구간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또 사업 기간을 4년 더 연장해 2025년을 목표시점으로 하고, 예산도 1,444억원 증액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라온 구축사업은 2011년부터 1조5,000억원 규모로 추진 중인 기초과학 프로젝트다. 양성자에서 우라늄까지 다양한 중이온(heavy ion)을 가속해 희귀 동위원소를 생성, 핵물리, 물성과학, 의료, 생명 등 다양한 기초과학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을 중이온 가속기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