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강원 원주시 재개발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을 위해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주민들은 노후화된 환경 때문에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1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 화재가 발생한 곳은 원주시 원동남산 재개발구역이다. 당초 화마는 A(65)씨 집에서 시작됐지만,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결혼 이주여성 B(32)씨의 집으로 삽시간에 옮겨 붙으며 필리핀에서 온 그의 어머니(73)와 두 자녀를 덮쳤다. 방에서 잠자고 있던 할머니와 아홉살, 일곱살 남매는 화재 당일 숨졌다.
주민들은 선발 소방대가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해당 가구의 아이들이 살아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구조를 시도했던 주민 장상만(55)씨는 "소방 선발대가 현장 인근에 도착했을 때 딸이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며 "소방대가 멀리 있어 직접 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봐서 구조가 여의치 않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불이 난 곳은 고지대에다 노후주택이 밀집해 각종 사고와 재난에 취약하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진입로도 좁아 진화차량과 소방대원이 신속히 진입하기 어려웠다. 주민 윤모(67)씨는 "소방차는 멀리 떨어져 있고, 사다리차는 무용지물이라 주민들이 같이 호스를 끌어 올려서 불을 껐다"고 다급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민 홍모(59)씨도 "불이 처음 난 집과 아이들이 사는 집을 구분하는 벽이 이미 무너져 있어서 소방관들이 빨리 진입하면 불을 끌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주민들은 불이 난 직후 아이들 집에서 9m 떨어진 곳에서 비상소화전을 찾아 대응하려 했지만, 이 역시 불가능 했다. 해당 소화전과 호스를 연결하는 밸브가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장씨는 "호스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구조인력을 찾아 마을 아래로 내려갔다"며 "얼마 뒤 소방대원들이 도착했지만 불이 번질만큼 번진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B씨는 연기를 들이마셔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B씨는 연기로 가득 찬 집에서 자녀들을 찾던 중 이웃 주민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감식을 벌였고, 사망자에 대한 부검도 실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