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영 KCC 명예회장 별세... 막 내린 범현대가 1세대

입력
2021.01.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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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범현대가(家) 1세대 시대도 막을 내렸다.

31일 KCC 등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지난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KCC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이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해 병원에 입원했으며, 이날 가족들이 모여 임종을 지켰다"고 전했다. 이로써 '영(永)'자 항렬의 범현대 가문 1세대 경영인 시대가 끝을 맺었다.

고인은 60년 넘게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1936년 강원 통천군 출신으로, 22세인 1958년 8월 슬레이트 제조 업체인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다.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서 도료 사업에 진출했으며, 1989년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이어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서 금강고려화학을 출범시켰고 2005년에 금강고려화학의 이름을 KCC로 변경했다.

고인이 기술국산화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적잖다. 1987년에는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화에 성공했으며, 반도체용 접착제 개발 및 상업화도 이뤘다.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 도료에 대한 독자기술을 확보했다. 2003년부터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실리콘 원료인 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하면서, 한국을 일곱 번째 실리콘 제조기술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고인은 현장 중심 경영인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까지 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를 봤을 정도다. 이 밖에도 고인은 인재 육성을 위해 동국대와 울산대 등에 사재 수백억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잡음도 있었다.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을 두고 벌인 이른바 '시숙부의 난'이 대표적이다. 고인은 2003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숨지자 "현대그룹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라며 당시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대량 매집했다. 그러나 고인은 경영권 분쟁에서 패했고, 지분 변동에 따른 보고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주씨와 정몽진 KCC 회장, 몽익 KCC글라스 회장, 몽열 KCC건설 회장이 있다. 정몽진 회장이 고인의 뒤를 이어 2000년부터 경영에 나서고 있으며, 둘째 정몽익 회장이 KCC글라스를 맡고 있다. KCC건설은 셋째 정몽열 회장이 갖고 있다. 이른바 유산을 둘러싼 '교통정리'가 일찌감치 마무리된 것이다.

KCC 관계자는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최대한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하게 사양하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음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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