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차별적 신원확인 중단하라" 프랑스 첫 집단소송

입력
2021.01.30 06:00
집단소송제 도입 이후 인종·민족 관련 첫 소송
佛 경찰 '인종차별적' 신원확인 개선 요구
국제인권단체 "오래된 관행 뿌리 뽑아야"

프랑스 경찰의 검문 시 신분증 요구 절차가 부당하게 적용된다며 국제인권단체가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신원확인을 남용해 인종차별을 부추긴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2014년 프랑스에서 집단소송제가 도입된 후 인종차별과 관련한 소송은 처음이다.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와 휴먼라이트워치(HRW) 등 비정부기구(NGO) 6곳은 지난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정부가 차별적인 경찰의 신원조회를 제지해야 할 의무에 소홀했다고 집단소송 이유를 밝혔다. 이들 단체들은 "피부색이나 인종을 배경으로 신원확인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관행이 경찰 내부에 널리 퍼져있다"며 "깊이 뿌리박힌 관행을 중단하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송자료에는 수십 명의 피해자 증언이 포함됐다. 인권단체 측은 백인과 비교해 다른 인종이나 소수 민족에게 신원확인을 요구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형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 그룹인 벤 애코어는 "우리가 수십만, 수백만 명을 대변할 수 있기에 혁명적인 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러 연구자료도 '차별적 신원확인' 사례를 뒷받침 한다. 2009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파리의 흑인들은 백인보다 신원확인 요청을 받을 확률이 6배 높았다. '아랍권' 사람으로 보이는 특징을 가진 사람은 8배였다. 2017년 프랑스 권익 옴부즈만의 보고서에는 흑인이나 아랍인으로 인식된 청년이 다른 집단에 비해 신분증 검사를 받을 확률이 20배나 높은 것으로 나왔다.

경찰 측은 반박에 나섰다. 스타니슬라스 가우돈 프랑스 동맹경찰연합 총대표는 AP통신에 "경찰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흑인이나 아랍계, 아시아인의 신분증을 확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 12월 영상 기반 뉴스 매체 브루트와의 인터뷰에서 "흰색이 아닌 피부를 가졌다면 경찰에 의해 제지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며 심각한 사회 문제임을 인정했다.

작년 5월 미국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하면서 프랑스에서도 경찰의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지난 11월엔 경찰이 흑인 음악 프로듀서를 정당한 이유 없이 집단폭행한 사건마저 일어났다.

게다가 당시 정부·여당이 경찰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사진 유포를 금지하는 '포괄적 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여론은 불리하게 돌아갔다. 검문 시 임의대로 신원확인을 요구하는 경찰의 행태와는 정반대이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보안법 규탄 시위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프랑스 당국은 절차에 따라 집단소송 제기 이후 4개월간 원고의 요구사항을 충족할 방법을 원고 측과 논의해야 한다.

이인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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