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습관이 최고 교육 인프라” 중랑구 '발상의 전환' 통했다

입력
2021.01.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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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독서 중요성 주목'
'취학 전 어린이 1000권 읽기' 시작
어린이집 유치원 등으로 확대
열악한 교육환경 극복에 총력


서울 중랑구에 사는 여섯살 우진이는 최근 1년 반 동안 동화책 1,000권을 읽었다. 책을 별로 읽지 않던 우진이에게 엄마가 “100권 읽으면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말로 시작했는데, 관내 도서관 추천도서 위주로 눈높이에 맞는 책을 엄마가 꾸준히 읽어주자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이다.

특히 도서관에서 "5세부터 매일 하루에 책 1권씩 읽으면 7세까지 1,000권을 읽을 수 있다"는 ‘취학 전 어린이 1,000권 읽기’ 사업 홍보물을 보고, 참여한 게 결정적 계기였다. 우진이 엄마는 “지금은 아이가 먼저 ‘책을 읽어달라’며 서너권씩 가져올 정도로 습관이 뱄다”며 “어느 새 한글도 익혀 혼자서도 책을 제법 읽는다”고 흐뭇해 했다.

지리적으로도, 교육환경 측면에서도 서울의 ‘변방’인 중랑구가 ‘발상의 전환’으로 실험에 나섰다. 학습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무형의 '독서 습관'이 최고의 '교육 인프라'라는 생각으로 책 읽기를 영유아부터 손수 챙기고 있는 것이다. 5~7세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2018년 7월부터 시작된 ‘취학 전 1,000권 읽기’가 대표사업이다.

28일 중랑구에 따르면 ‘취학 전 1,000권 읽기’는 5~7세 어린이 2,565명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 4년 차인 올해까지 1,000권 읽기를 달성한 어린이도 52명이나 된다. 부모들은 “아이가 아침마다 스스로 책을 읽어 좋다” “어휘력과 표현력이 풍부해졌다” “집중력이 생겼다” “많은 감정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며 만족해 했다.

중랑구는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독서의 중요성이 커진 점에 주목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 요즘은 영유아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등의 영상을 많이 접해, 어린이들의 문해력이 낮아지고, 진학 시 학습 전반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랑구 관계자는 “중교생 때 독서 습관을 바로 잡으면 늦다”며 “취학 전 제대로 책 읽는 습관만 길러도 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열악한 교육환경’을 ‘책 읽는 습관’으로 극복하겠다는 각오도 담겨있다. 중랑구에는 외국어고ㆍ과학고ㆍ국제고 등 특목고는 물론 4년제 대학도 하나 없다. 교육부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따르면 중랑구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37.5%(2019년 기준)로, 서울 전체 진학률(41%)에 못 미친다. 인접한 노원구 등 교육 여건이 나은 다른 지역으로 인구가 빠지고 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중랑구는 올해부터 1,000권 읽기 사업 참여 대상을 어린이집ㆍ유치원 등 137개소(4,125명)로 확대했다. 또 참여 아동 학부모 교육과 체험활동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 마련하는 등 사업을 전폭 지원할 방침이다.


공교육 지원과 투자도 과감해졌다. 오는 5월 상봉동에 문을 여는 ‘방정환교육지원센터’는 흩어져 있던 평생학습관,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교육복지센터 등을 한 데 모아 교육격차 해소에 나선다.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관심분야 취약과목 수상경력 등을 꾸준히 등록ㆍ관리하면서 진로ㆍ적성을 찾아주는 맞춤형 컨설팅과 자기주도학습을 지원하고, 학부모 대상 교육정책 입시제도 안내ㆍ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류경기 구청장은 "학교 환경개선과 학력신장에 사용되는 교육지원경비를 2018년 38억원에서 올해 70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며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지원경비 70억원은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세 번째로 높은 것이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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