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강도치사' 진범은 누명 피해자에 사죄했지만, 검사는 하지 않았다

입력
2021.01.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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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누명 씌워 처벌한 국가 상대 손배소
1심 법원 "피해자·가족에 총 15억 배상" 선고
진범도 법정 참석해 다시 한번 사죄 구해


우리가 한 잘못은 평생 뉘우치면서 살아야 하고, 저희 대신 징역을 살고 나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구하려고 (내가 진범이라고 양심고백을) 했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진범 이모씨
용기를 내서 이렇게 나와 준 이 친구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마음 속 진심 어린 용서를 전하고 싶습니다.
사망한 피해자 유모 할머니의 아들 박성우 씨

이른바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수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국가와 당시 수사검사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28일 나왔다. 법정에는 누명 피해자들뿐 아니라, 이들의 재심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이었음을 고백한 진범과 그를 용서해 재심을 도운 강도 사건 피해자들도 함께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 박석근)는 일명 ‘삼례 3인조’ 임명선(42)·최대열(41)·강인구(41)씨와 그 가족들이 국가 및 당시 수사검사인 최모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임씨 등 3명은 22년 전 경찰의 강압수사로 살인 사건 범인으로 몰리는 바람에 3년 6개월~5년 6개월 동안 복역했다. 한참 후 진범의 자수로 누명이 벗겨져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이미 빼앗긴 청춘은 되돌릴 수 없었다.

배상금은 피해자 1인당 3억~4억원대로 결정됐고, 법원은 함께 소송을 낸 가족들에 대한 배상액까지 합해 국가가 총 15억6,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특히 전체 배상금 중 약 20%는 최 변호사가 국가와 함께 부담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최 변호사가 도리어 "삼례 3인조가 내 명예를 훼손했다"며 제기한 3,000만원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범들 자백 받고도 바로잡지 않은 검찰

'삼례 강도치사' 사건은 1999년 2월 6일 30대 부부가 운영하던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현금 등을 훔쳐 달아나는 과정에서, 강도들이 주인 부부의 친척인 유모(당시 76세) 할머니의 입과 코를 청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정신지체장애를 갖고 있던 임씨 등 ‘삼례 3인조’를 범인으로 체포한 다음 거짓 자백을 받아냈고, 검찰은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임씨는 징역 6년, 재판 당시 미성년자였던 최씨와 강씨는 징역 장기 4년 단기 3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판결이 확정된 직후 이들이 억울함을 풀 결정적 기회가 찾아왔다. 1999년 11월쯤 부산지검이 진범은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고, ‘부산 3인조’를 검거해 자백까지 받아낸 뒤 사건을 전주지검에 넘긴 것이다. 그러나 ‘삼례 3인조’를 기소했던 최모 당시 수사검사는 '부산 3인조'가 진범이라는 자백에 신빙성이 없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삼례 3인조’는 만기 출소 한참 뒤인 2015년 3월 “경찰 강압수사 탓에 허위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부산 3인조’ 중 한 명인 이모(52)씨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선언을 하고,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삼례 3인조는 결국 사건 발생 17년 만인 2016년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듬해 국가와 최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진범 용서한 피해자들의 관용에 의미"

이날 선고 후 '누명 피해자' 최대열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모든 가족들이 행복하게 지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형사 재심과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한 박준영 변호사는 “진범이 자백까지 했음에도 진범은 풀어주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옥살이하게 만든 이런 수사는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도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나라슈퍼’ 주인 최성자씨와 숨진 유 할머니의 아들 박성우씨, 그리고 진범 이씨도 자리에 함께 했다. 기자회견 중 이씨가 다시 한 번 사죄를 구하자, 최성자씨와 박씨는 그를 용서하고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씨는 양심 고백 이후 유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 무릎 꿇고 사죄했다.

최성자씨는 “힘없고 아프고 약한 사람들을 짓밟은 사건”이라며 “위에 힘 있으신 분들은 누구도 사과를 안 하고, 경찰도 여전히 이분들이 범인이라고 주장한다”고 질타했다. 박씨는 “어머니를 죽인 진범에게 도리어 고맙다며 악수를 청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사건”이라며 “1999년 아픔에서 여기까지 왔지만 경찰과 검찰, 공권력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오늘 이 자리에 진범이 끼어있을 수 있는 이유는 피해자와 유가족이 용서를 해 줬기 때문”이라며 “강도 사건 피해자 입장에선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겨주고,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사람이지만, 손을 내밀어 (진범이) 용기를 내게 해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재심 과정에서) 진범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고, 진범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피해자와 유가족의 용서와 관용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해 재심 재판부와 경찰, 검찰은 2016년 재심 무죄 선고 직후 ‘조직 차원’에서 사과나 위로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과거 ‘삼례 3인조’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1심의 배석판사였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국회의원 시절 피해자들을 국회로 초청해 직접 사과를 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 경찰관과 검사는 개인적인 사죄를 하지 않았다. 특히 최 변호사는 끝까지 “삼례 3인조가 진범”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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