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중대 비위 공무원, 수사의뢰만으로 직위해제 가능”

입력
2021.01.26 16:04

중대한 비위 의혹이 드러난 공무원에 대해선 ‘수사 의뢰’ 처분만으로도 곧바로 직위해제가 가능하다는 항소심 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0부(부장 이원형)는 최근 국립재난안전연구원장을 지낸 A씨가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직위해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1심 땐 원고승소 판결이 나왔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지난 2018년 8월 말, 행안부는 국무조정실로부터 A씨의 뇌물수수 비위 혐의를 통보받자 같은 해 9월 3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A씨를 원장직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A씨는 이에 반발, “나는 ‘수사 중인 자’가 아닌데도, 직위해제를 한 것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직위해제는 ‘금품비위ㆍ성범죄 등으로 감사원ㆍ검찰ㆍ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이고, 비위 정도가 중대해 정상적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자’에 대해 가능하다. 이를 근거로 A씨는 “직위해제 처분 당시(9월 4일)만 해도, 나는 수사를 받던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행안부에 보낸 공문에 수사개시 날짜가 ‘9월 6일’로 적혀 있었던 탓이다. 1심은 “2018년 9월 6일에야 비로소 수사가 개시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고, 직위해제 이전에 A씨를 조사한 국무조정실 등은 ‘수사기관’으로 볼 수 없다”면서 A씨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우선 “행안부의 수사의뢰서 내용을 보면, A씨가 뇌물수수ㆍ청탁금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인적 사항과 혐의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고발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상, 수사의뢰가 접수된 즉시 A씨에 대한 수사가 개시됐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행안부가 직위해제 처분 이전에 확보한 증거자료에 비춰, 당시 A씨는 국가공무원법상 당연퇴직 사유인 유죄 판결을 받을 고도의 개연성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비위 혐의가 중대하고, 어느 정도 소명된 상태에서 직위해제 처분이 내려진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로 A씨에겐 지난해 말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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