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에게 온 편지를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열어서 내용물을 보는 건 법적 처벌을 받는 행위에 해당할까.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 소재의 한 불교재단 직원 A(54)씨는 2019년 8월 동료 직원 B씨 앞으로 온 우편물을 개봉했다. 그 중 일부를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A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이른바 '편지개봉' 혐의였다. 형법 제316조(비밀침해)는 ‘봉함 기타 비밀장치한 사람의 편지, 문서, 또는 도화를 개봉하거나 그 내용을 알아낸 자’를 3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의 쟁점은 A씨 행위의 고의성 유무였다. A씨는 법정에서 “우편물을 개봉한 건 사실이지만, B씨가 아니라 근무지로 온 업무상 우편물로 알고 개봉했다”며 “범죄의 고의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들에 의해 인정되는 사정을 종합하면, A씨에게 미필적으로나마 편지개봉의 범의가 있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폐쇄회로(CC)TV 영상 조사 결과, △A씨가 우편물을 다른 직원으로부터 건네 받고 2~3초 동안 봉투 겉면을 응시하며 확인했고 △봉투 개봉 후 1분 넘게 내용물을 살펴봤으며 △우편물 내용물 중 일부에 대해선 휴대폰 촬영까지 했다는 점 등이 재판부가 제시한 근거였다.
‘재단에 온 업무상 우편물로 알았다’는 A씨 주장도 기각됐다. 그는 “수신인 주소만 확인했을 뿐, 받는 사람의 이름은 실수로 확인하지 못 했다”고 했으나, 재판부는 “주소 바로 밑에 기재된 수신자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건 경험칙상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씨는 내용물 중 일부를 촬영한 이유에 대해선 “소송 비용을 청구하는 내용으로 알고, 재단 자문변호사에게 물어보려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우편물 내용물은 B씨의 무죄 판결문 등으로 재단법인 사무와 관련 없는 사적인 서류였다”면서 이 부분 해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이 같은 판단을 토대로 A씨의 유죄를 인정,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