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안팎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구금이 결정적 한 방이 됐다. 나발니 석방을 요구하는 반(反)정부 시위가 나라 전역을 뒤흔들자, 미국과의 관계까지 동시에 얼어붙었다. 새로 출범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제대로 된 관계를 설정하기도 전에 대치부터 한 형국이다. 그렇다고 연일 자신의 치부를 까발리는 나발니를 순순히 풀어줄 수도 없어 진퇴양난에 빠졌다.
독극물 중독에서 살아남은 나발니는 푸틴에게 훨씬 더 위협적 존재가 됐다.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23일(현지시간) 러시아 100여개 도시에서 벌인 동시다발적 시위는 나발니의 영향력을 명확히 보여줬다. 최근 일주일 동안 푸틴을 정조준한 폭로전도 만만치 않았다. 13억달러(약 1조4,200억원) 규모의 초호화 저택 건설 의혹과 ‘숨겨진 딸’ 공개 등은 반정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17일 귀국한 나발니의 신체만 구속했을 뿐, 그의 입까진 틀어 막지 못한 탓이다.
균열은 안에서부터 시작됐다. 시위대에 밀려 나발니를 석방하자니 자신의 권위가 깎이고, 그대로 두자니 시위대의 자신감만 더해질 게 뻔하다. 지난해 개헌으로 2036년까지 사실상 종신 독재 토대를 마련했으나 시위 여파가 이어져 올해 9월 총선에서 패하면 권력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다.
푸틴의 조급함은 나발니에 대한 달라진 전략에서 드러난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24일 국영TV 방송에 출연해 나발니가 제기한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간 나발니의 존재를 애써 무시했던 태도를 버린 것이다. 나발니의 측근이자 시민단체 '반부패재단' 이사인 블라디미르 아슈르코프는 같은 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 인터뷰에서 "(러시아 정부는) 정말로 (나발니를) 두려워하고 있다”며 경찰의 강경대응이 그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러시아 전역에서 23일 체포된 시위대는 3,500여명을 헤아린다.
여기에 인권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미 행정부까지 출범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나발니 석방을 촉구하고 시위 강경진압을 규탄한 설명을 내놨다. 러시아 측은 곧장 “내정 간섭”이라고 맞받아쳤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나흘 전(20일) 바이든 행정부가 양국간 핵무기 감축을 위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ㆍ뉴스타트)’의 5년 연장 추진 방침을 밝혔을 때만해도 러시아 정부는 즉각 환영했다. 미국과 대화를 원하지만 나발니 문제로 물러설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나발니가 공격하고 크렘린은 방어만 하고 있다. 푸틴에게 좋은 선택지는 거의 없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나발니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는 주말인 30, 31일에도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내달 2일 나발니의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따라 판세가 다시 요동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