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승만(가명)이 급식비 내준 경찰샘이 있다는데 누군지 좀 가르쳐 주이소."
2005년 대구 수성경찰서에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와 아이가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4년간 손자의 급식비를 내준 후원자를 찾아온 할머니였다. 그 바람에 14년간 남몰래 이어온 한 경찰관의 선행이 밝혀졌다. 현재 대구 성서경찰서 윤흥용(56)경위 얘기다.
윤 경위는 동료들 사이에서 '키다리 아저씨'로 통한다. 경찰에 입문한 1991년부터 월급 일부를 떼어내 결식아동 등 소외계층을 위해 후원하기 때문이다. 익명으로 해 오다 2005년 후원을 받은 할머니가 경찰서를 찾는 바람에 동료들도 다 알게 됐다.
박봉에도 그가 30년간 후원을 계속하는 것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받은 도움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도시락이 없어서 점심을 굶고 있을 때 친구들이 밥을 나눠줘서 굶지 않을 수 있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 신문 배달을 했다. 학생으로선 쏠쏠한 수입이었지만 병석에 있는 부모님 병시중부터 동생들까지 챙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할 뻔했을 때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무사히 졸업했다.
그는 첫 월급을 봉투째 들고 인근 초등학교를 찾았다. "익명으로 매달 5만원씩 후원할 테니 결식아동들을 위해 써달라"며 현금으로 맡겼다. 30년 기부의 시작이었다.
금전적 후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1997년에는 순찰 중 알게된 독거노인을 14년 동안 후원했다. 임종을 앞둔 노인이 '죽기 전 자식이 보고 싶다'는 말에 20년 넘게 소식이 끊긴 딸을 찾아주기도 했다. 1986년 봉사활동을 하다 인연을 맺은 지체장애인 모자를 10년 넘게 후원하다 숨지게 되자 구청에 알려 장례절차를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윤 경위에게도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아내와 두 아들이다. 그는 "아내는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한 번도 후원금에 관해 불평을 하지 않았다"며 "아이들도 초등학생 때부터 용돈을 모아 후원금으로 보태곤 했다"고 말했다.
한 동료 경찰관은 "기부만 열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도 빈틈없이 하는 성격"이라며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학 석사과정까지 취득해 인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청장 표창 등 각종 표창장만 46개나 된다. 지난해 말에는 대구시교육청으로부터 최장기 후원 활동을 인정받아 교육기부자 감사패도 받았다.
그는 "친구들이 나눠준 도시락과 계란 한 알의 맛이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다"면서 "수입이 있는 한은 크든 작든 누군가의 마음에 평생 잊히지 않는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