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미스터 두들’의 작품입니다. 1,400만원으로 출발합니다. 100만원씩 올라갑니다. 1,500, 1,600, 1,700 (중략) 2,700 계십니까? 최고가 2,600으로 마무리합니다. (땅땅땅). 현장 210번 손님께 낙찰됐습니다.”
20일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경매장. 코로나19가 일상을 옥죄고 있지만, 올해 첫 메이저 오프라인 경매는 여느 때처럼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경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위 잘 팔릴 것 같은 작품이 앞에 배치되는 까닭에 초반엔 따라가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순식간에 가격이 오르고 낙찰자가 정해졌다. 경매에 나온 근현대 미술 작품 80여점 중 10번까지의 낙찰에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1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지 않던 지난해 1월 경매 땐 현장에 100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북적였다. 하지만 정부의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지금은 30명의 고객만 현장 응찰자로 입장할 수 있다. 행사의 경우 50인 이상 집합이 금지되는데, 현장에 꼭 있어야 할 경매사 직원이 20명 정도되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의자도 2m 가량씩 띄어 앉게 배치됐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고객을 분산시키기 위해 지하 1층 등 분리된 곳에 스크린을 통해 경매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며 “이전 같으면 후반부에 진행되는 고미술품 경매 응찰자가 근현대 미술품 응찰자와 한 공간에 머물렀을 텐데, 지금은 인원 제한으로 고미술품 응찰자가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다 근현대 미술품 응찰자가 빠지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경매사가 이전보다 바빠진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응찰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경매를 진행한 손이천 수석경매사는 “서면, 전화, 현장뿐 아니라 ‘온라인 라이브 응찰’까지 한꺼번에 보면서 챙겨야 해 신경 쓸 게 많아졌다”고 전했다. 실제 경매사의 눈은 ‘온라인 라이브 응찰’을 볼 수 있는 모니터 화면과 현장 응찰자의 패들, 전화 응찰 담당 직원 등을 훑느라 바빴다. ‘온라인 라이브 응찰’은 사전에 홈페이지에서 신청해 패들 번호를 부여 받은 이들이 경매 당일 온라인으로 경매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응찰하기 버튼을 눌러 응찰하는 제도다. 코로나19로 지난해 9월 전격 도입됐다. 지금은 전체 낙찰의 10%정도가 온라인 라이브 응찰로 성사될 정도로 정착했다.
이번 경매는 최근 작고한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작품 인기를 실감케 하는 자리기도 했다. 경매에 출품된 네 점 모두 최대 낙찰가 추정액을 뛰어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1983년작 ‘물방울 SH84002’는 1억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최대 추정가 8,000만원보다 무려 7,000만원이 높은 금액이다. 2003년작 ‘물방울 SA93914-03’도 3,000만원 더 높은 1억원에, 2000년작 ‘물방울 SB200011’은 700만원 많은 5,200만원에, 2018년작 ‘물방울 SA201806’은 2,000만원 더 많은 5,000만원에 각각 낙찰됐다.
여성 작가가 저평가 돼 온 시류를 감안할 때, 추상미술 화가인 최욱경의 선전도 눈에 띤다. 최욱경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1975)’는 최고 추정 낙찰가인 1억5,000만원에 근접한 1억4,500만원에 낙찰됐다.
가장 고가에 팔린 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의 1989년작 ‘Work’다. 일출 장면을 노랑, 빨강, 주황, 초록 등 단순한 색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7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30억원으로 시작해 가장 비싸게 낙찰될 것으로 예상됐던 추상화가 김환기의 말년작 ’22-X-73 #325’는 경매 전 출품이 취소됐다. 원하는 가격에 팔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 위탁자가 출품을 취소하기도 한다.
이번 경매는 코로나19 시기를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낙찰률은 전년 동기 대비 2%포인트 오른 76%를 기록했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총 낙찰가액(50억200만원)은 작년보다 줄었지만, 3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던 김환기 작품이 경매 직전 출품 취소된 영향이 크다”며 “내부적으론 나쁜 수치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