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탄압'하는 나라 군대 훈련시킨 영국군

입력
2021.01.19 07:00
사우디 등 인권 침해국들에 군사훈련 제공

영국은 세계 10위권 군사력을 자랑하는 군사 강국이다. 한 때 세계를 호령하며 축적된 군사기술은 꾸준히 전 세계로 수출됐다. 그런데 영국이 다른 국가에 제공하는 군사훈련이 요즘 말썽이다. 국민을 무력으로 탄압하는 나라들의 군대까지 훈련시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돈벌이에 급급해 권위주의 국가들의 ‘인권 침해’를 도왔다는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1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이 입수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2018~2019년에 130개국, 2019~2020년엔 120개국에 군사훈련을 제공했다. 유엔 전체 회원국(193개국)의 3분의2에 달하는 수치다. 엄청난 규모에서 보듯 영국의 군사훈련 능력은 세계적이다. 영국군 국제방위 훈련 안내 책자에는 1,000개가 넘는 군사훈련 과정이 담겨있다. 작전 지휘부터 전술, 사격 등 실전 기술은 물론 금융, 의료, 군악 등 군대 운용 전반에 관한 내용도 가르친다. 영국군 스스로도 “세계적 수준의 군사훈련을 제공하는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도 영국의 군사기술 습득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는 영국 외교부(FCO)가 지정한 ‘인권 우선국’ 명단에 올라 있다. FCO는 2016년부터 ‘인권과 민주주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인권 개선이 시급한 나라를 따로 분류해 공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국 정부도 인권상황이 열악하다고 인정한 나라의 군대를 최신 훈련으로 무장시킨 셈이다. 지난해 7월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30개국이 인권 우선국으로 지정됐는데, 15개국이 훈련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심지어 영국이 무기수출을 금지한 수단,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등 8곳도 들어 있다.

실제 영국군이 훈련한 사우디군은 2011년 바레인 민주화 시위를 진압했고, 1980년대 스리랑카 내전 당시 타밀족 학살을 주도한 스리랑카 경찰을 영국인 용병들이 훈련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인권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비영리기구 ‘무기거래반대캠페인(CAAT)’에서 활동하는 앤드루 스미스는 “군사훈련 지원은 인권 침해로 기소된 몇몇 나라의 군대에 지지를 보내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CAAT는 수출된 군사훈련이 인권유린에 사용됐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영국 정부에 전수 조사를 요청했다.

영국 국방부는 타국에 제공되는 군사훈련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대변인은 매체에 “국방 협력은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제인도법을 포함한 국제 기준을 모두 고려해 군사훈련 참여가 이뤄진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이인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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