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위는 왜 분열된 미국 사회에 다시 소환됐나?

입력
2021.01.14 19:41

'눈사람은 안에서부터 녹고 / 매는 나선형을 그리며 땅으로 내려앉고 / (가장 큰 하늘일지도 몰라) / 핏빛처럼 붉은, 내일의 구름 / ... / 이건 미국이 아냐'

암호 같은 가사가 인상적인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This Is Not America'가 36년 만에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지지자의 의사당 난입 사태 등으로 최근 미국 사회가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는 상황이어서 더 눈길을 끈다.

빌보드는 13일(현지시간) 보위의 'This Is Not America'가 16일자 리릭 파인드(Lyric Find) 미국 차트에서 2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리릭 파인드' 차트는 한 주간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가사가 검색되는 노래의 순위를 보여주는 차트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사 서비스 업체인 리릭 파인드의 데이터를 토대로 한다.

빌보드에 따르면 '디스 이즈 낫 아메리카' 검색 수치는 전주 대비 무려 4,573% 증가했다. 이 곡은 원제가 '눈사람과 매(The Falcon and the Snowman)'인 숀 펜, 티모시 허튼 주연의 영화 '위험한 장난'의 주제가로 영화음악을 맡은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 그룹의 연주곡 'Chris'에 보위가 가사를 입혀 부른 곡이다.

영화는 소련에 국가 기밀을 판 CIA 요원과 그 친구의 실화를 그린 로버트 린지의 소설이 원작이다. 철없는 두 매국노 청년이 소련 KGB와 내통하다 체포되는 과정을 그린다. 메시니가 "의미심장하고 심오하다"고 말한 보위의 가사는 은유적으로 영화의 주제를 전하지만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이 노래의 가사가 지난 한 주 많이 검색된 것은 가사 내용보다는 후렴구에 여러 차례 반복되는 제목 차체의 의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빌보드는 "5일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투표와 6일 국회의사당 공격과 관련 있는 가사의 노래가 올라온 이 차트는 미국 분열의 일주일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위의 노래 4개가 리릭 파인드 순위에 올랐는데 1월 10일이 5년 전 사망한 보위의 기일인 만큼 관련 노래 검색이 급증한 측면도 있다고 부연했다.

보위의 곡 중에선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노래 'Five Years'가 7위(가사 검색 2,000% 증가), 'I'm Afraid of Americans'가 14위(553% 증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이 모인 것을 지켜보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로라 브래니건의 1982년 히트곡 'Gloria'는 3위에 올랐다. 고인이 된 브래니건의 유산 관리인 측은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난 비극적이고 불안하며 수치스러운 사건들을 고려할 때 '글로리아'가 언론의 영상에서 나오는 것을 들으니 정말 끔찍하다"고 비판했다.

이들 곡 외에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10위), 블랙 사바스의 'The Mob Rules'(19위), 레너드 코헨의 'Democracy'(21위) 등 정치적 색채를 띤 노래가 상위권에 올랐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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