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포청천' 사라지자 '작전' 판치는 증시

입력
2021.0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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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꼭 잡으시고 문의는 아래 번호로 연락주십시오!'

'◇◇◇◇ +20.2%, □□□□ +17.5%, 잡으셨죠? 통화 가능하신가요?'

박모(55)씨는 최근 이런 휴대폰 문자를 받을 때마다 유혹에 빠진다. 매일 오후 장이 마감된 뒤 다음날 급등할 종목이라며 투자를 권하는 문자가 오는 것. 처음엔 무시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실제로 해당 주식의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가 생기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박씨는 "휴대폰 문자 외에도 유튜브 영상이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고수익률을 내세우며 특정 종목 투자를 선동하는 콘텐츠가 넘쳐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증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본 시장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작전 세력'이 활개치고 있다. '금융 범죄의 포청천' '여의도의 저승사자' 로 불렸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지난해 초 해체된 뒤 증시가 사실상 작전 세력의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맨은 4일 "지금 증시에는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운 뒤 개인 투자자가 달려들면 곧바로 털고 나가는 '작전'과 내부자거래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며 "합수단은 해체됐고 금융감독 당국도 사모펀드 전수조사 등으로 여력이 없어 단속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주식 투자 관련 피해자가 잇따르자 금감원도 소비자 경보(주의)를 발령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사이버 불법금융 행위 제보 코너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2019년 139건에서 2020년 495건으로 급증했다. 이들은 주로 유튜브와 카카오톡을 통해 정상적인 주식 거래를 '리딩'(Leading)해주는 것처럼 광고한 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며 유료 회원 가입이나 해외 선물 거래 등을 유도한다. 이때 메신저를 통해 사설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배포한다. 인터넷 광고를 통해 단체 대화방 운영자를 알게 된 뒤 수천만원을 입금하고 HTS를 내려받아 해외 선물 등을 거래하다 큰 손해를 본 경우도 있다. 선물에 투자하려면 기본 예탁금이 필요한데 이를 피하려고 무인가 금융투자업체를 이용할 경우 사기를 당하기 쉽다. 탈퇴나 환불을 요청하면 과도한 위약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금감원은 "사설 HTS는 절대 이용하지 말고, 투자를 권하는 회사가 있다면 금융소비자 정보 포털 '파인'에서 제도권 금융회사인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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