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계산 다시 해"… '대선 불복' 트럼프, 조지아 장관에 전화로 압력

입력
2021.01.04 09:45
WP, 녹취록 입수… "바로잡으면 존경" 회유도

여전히 대선 결과에 불복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주(州) 정부 장관에게 전화해 협조를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정황이 담긴 통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브래드 래펜스퍼거 조지아주 국무장관과 한 시간 동안 전화로 대화하며 선거 결과가 뒤집히도록 표를 다시 계산하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날 이뤄진 둘 간 통화의 녹취록을 공개하면서다.

조지아주는 이번 대선에서 1만1,779표 차이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승리한 곳이지만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텃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뒤 줄곧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공화당원인 조지아 주지사와 국무장관에게 결과 번복을 위한 협조를 요청해 왔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래펜스퍼거 장관에게 “1만1,780표를 되찾기를 바란다”며 “조지아 사람들은 화나 있다. 당신이 (투표를) 다시 계산하겠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 차례 “내가 조지아에서 졌을 리가 없다”며 “우리는 수십만표 차이로 이겼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래펜스퍼거 장관은 “당신의 이의 제기, 당신이 가진 데이터는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형사 책임 대상이 될 거라고 래펜스퍼거 장관을 협박하기도 했다. “그것은 형사 범죄다. 당신은 그대로 놓아둬서는 안 된다. 그건 당신에게 큰 위험”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조지아 상원 결선투표일인 5일까지 나서지 않으면 공화당 상원 후보인 데이비드 퍼듀와 켈리 뢰플러의 정치적 운명이 위태로워진다고 래펜스퍼거 장관에게 행동을 독촉했다. “당신이 대통령에게 한 일 때문에 많은 사람이 투표장에 가지 않을 것이고, 많은 공화당 지지층은 부정적인 투표를 할 것”이라면서다.

하지만 위협만 하지는 않았다. “만약 (조지아) 선거 전에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존경 받을 것”이라며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수천명의 사망자 투표, 1만8,000개에 달하는 바이든 표의 세 차례 스캔, 투표를 위한 수천명의 불법 이주 등 음모론 성격의 의혹도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했지만 래펜스퍼거 장관은 “세 번 스캔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됐다”거나 “실제 사망자 투표 사례는 두 개뿐”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화나 있는 상태였고, 래펜스퍼거 국무장관을 ‘어린애’라 부르거나 ‘부정직하고 무능하다’고 매도하기도 했다고 WP는 전했다.

‘압력 통화’는 대선 결과를 최종 인증하는 6일 상ㆍ하원 합동 회의 때 공화당 일부 의원이 이의 제기를 하겠다고 한 뒤 곧장 이뤄졌다고 WP는 전했다. WP는 “추켜세우고 애원하고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범죄 결과를 초래할 거라고 위협하기까지 했지만 래펜스퍼거는 통화 내내 트럼프 대통령 요구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장황하고 때로는 앞뒤가 안 맞는 대화 내용은 트럼프가 결과를 되돌릴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놀랄 만한 단면을 보여 준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통화와 관련해 미 오하이오주립대 법학 교수 에드워드 폴리는 법적 문제가 모호하며 검찰 재량에 따라 결정될 거라면서도 해당 통화가 적절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분노를 촉발할 거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래펜스퍼거 장관과 통화한 사실을 언급한 뒤 “그는 은밀한 투표 사기, 투표 용지 폐기, 주 밖의 유권자, 사망자 유권자 등에 대한 질문에 답을 꺼리거나 할 수 없었다. 그는 전혀 모른다”고 썼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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