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로 유명했던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31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는 이날 아무런 퇴임사를 남기지 않았다. 코로나19 항체 치료제인 ‘렉키로나주’의 조건부 허가심사 신청을 한 마지막 행보가 그의 마지막 인사를 갈음했다.
셀트리온에 따르면, 서정진 회장은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서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무보수직인 명예회장에 추대될 예정이다. 서류상 은퇴는 내년 3월이지만 서 회장은 31일부로 모든 업무에서 손을 뗀다. 지난해 1월 기자간담회에서 2020년 말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내달 열리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10년 만에 불참하기로 한 것도 서 회장의 결정이다. 국제 제약ㆍ바이오업계 최대 규모 콘퍼런스인 이 행사에서는 글로벌 마케팅과 인수합병(M&A), 라이선스아웃(LO) 등을 위한 협상의 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해마다 많은 제약ㆍ바이오업체가 참가를 희망하지만, 셀트리온은 코로나 치료제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서정진 회장의 마지막 역작으로 기억될 렉키로나주는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에 존재하는 중화항체를 선별해 만든 항체치료제다. 임상 2상 시험 결과 코로나19 환자의 회복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식약처는 안전성과 효과를 검토해 이르면 내년 2월 렉키로나주의 허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진행 중인 3상 임상시험 결과를 시판 허가 후에 제출하는 조건이다.
셀트리온의 국산 코로나19 항체치료제가 내년 2월 시판된다면, 코로나 백신 도입이 늦어지는 국내 상황을 뒤집을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 반면 시판 과정에 자칫 차질이 빚어지면 그간 급등했던 셀트리온 계열사 주가가 곤두박질 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하지만 셀트리온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독감 항체 신약(CTP27) 개발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가 항체치료제 개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며 “치료제가 시판되면 국내용은 공공재처럼 원가 수준에서 무제한 공급하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치료제라는 주사위를 던진 서 회장은 이제 셀트리온을 떠나 바이오 벤처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향후 ‘유헬스케어’ 분야에서 바이오 스타트업 시작한다는 의사 내비쳤다. 올초에는 핀란드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원격의료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도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