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추행 의혹 수사, 진상 규명 의지는 있었나

입력
2020.12.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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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박 전 시장 사망), 서울시 공무원들의 추행 방조는 혐의 없음(증거 부족) 결론을 내리고 고소 문건 유출, 악성 댓글 등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다는 수사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성추행과 방조라는 본질은 규명되지 않은 채 일부 2차 가해자만 처벌 대상이 된 맥 빠지는 결과다. 5개월간 46명의 수사 인력을 동원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용적으로는 수사 의지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시장 성추행 고소 건이 그의 사망으로 불기소 송치된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서울시 직원들의 방조 불기소는 경찰이 제 역할을 안 한 것으로 볼 만하다. 경찰은 이날 박 전 시장의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이 2차례나 기각되는 등의 이유로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이유는 다른 직원들의 방조 혐의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휴대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정작 고발된 5명의 휴대폰에 대해서는 영장을 신청하지도 않았고, “필요성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선 본안 사건 피의자 사망과 영장 기각으로 증거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증거가 불충분한 것인가, 수사가 불충분한 것인가.

기소 여부와 별개로 진상 규명에 기여할 수도 있었건만 수사 결과 발표는 오히려 실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과 사망 배경에 대해 “밝힐 수 없다” “밝히지 않는 게 맞다”며 안갯속에 남겼고, 직원 방조에 대한 일부 참고인 진술이 피해자 진술과 배치된 사실만 인정하고 일치된 부분은 “밝히는 게 적절치 않다”고 했다. 고인과 유족을 배려하더라도 피해자 입장을 고려해 최소한의 실체를 밝혀야 했건만 거꾸로 피해자를 의심케 할 여지를 남겼다.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의 말처럼 “경찰이 2차 가해 지속에 기여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지난 7월 “수사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킨 결과가 이것이라니 실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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