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한파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올해로 21년째다.
29일 오전 11시 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남성은 제 이야기만 짧게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전화가 와서는 대뜸 “주민센터 근처 골목길에 상자 하나를 뒀다. 어려운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만 밝힌 뒤 전화가 끊겼다"고 말했다.
'얼굴 없는 천사'임을 직감한 직원들이 현장으로 달려가보니 5만원권 지폐다발과 저금통 1개, 편지가 담긴 A4용지 박스가 놓여 있었다. 돈을 다 헤아리니 5만원권 지폐 1,400장과 동전 12만8,980원 등 자그마치 7,012만8,980원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얼굴 없는 천사의 21년째 선행이었다.
이날 성금함에는 편지도 들어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이겨내실 거라 믿습니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전주시는 이 성금을 사랑의 공동 모금회를 통해 지역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그는 또 "지난해 저로 인한 소동이 일어 죄송합니다”라며 지난해 성금 6,000여만원을 도난 당하고 경찰이 되찾은 사건에 대해서도 미안함을 표시했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2000년 4월 시작됐다. 당시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을 통해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장을 동사무소에 전달했다. 이듬해에는 20대 여성을 통해 742만8,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전달했고, 2002년에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12월 두 차례 걸쳐 모두 261만2,60원을 건넸다. 2011년부터는 5,000만원 이상의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전주시 관계자는 "전주는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으로 따뜻한 '천사의 도시'도로 불렸고, 이를 계기로 익명 후원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시민들의 온정을 어려운 이웃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얼굴 없는 천사비'를 세웠고, 주민들은 매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 나눔바자회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