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으로 숨겨진 기업부실 위기...당국 "괜찮다"vs 은행 "구조조정 해야"

입력
2020.12.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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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신용평가 결과 발표...부실징후기업 26% 감소
261조나 풀린 코로나 금융지원금 영향
당국 "감내 가능한 수준" vs 은행 "구조조정 나서야"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생산 등 실물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 지난해 200곳이 넘던 부실징후 기업 수가 올해는 157곳으로 줄어들었다는 역설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의 금융지원 덕에 기업들의 부실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인데, 기업 부실 사태가 금융 시스템 등 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자도 못내는 기업 42%인데...부실 기업수는 감소?

금융감독원이 28일 발표한 ‘2020년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은 올해 157개 회사를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는 지난해(210개)보다 26% 줄어든 수치다. 특히 지난해 ‘경영정상화 가능성 낮음’이라는 최하위 평가를 받은 D등급 기업들은 지난해 151개에서 올해 91개를 기록해 40%(60개)나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기업 경영 환경이 극도로 악화된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올 상반기 기준 벌어들인 돈(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갚지 못한 잠재적 부실기업이 지난해 37.2%에서 올해 42.4%로 크게 늘어났다는 최근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와도 배치된다.

부실징후기업 수가 감소한 이유는 금융당국의 지원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2월 7일부터 이달 4일까지 금융권에서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ㆍ소상공인 등을 위해 집행한 금융지원 규모는 총 261조1,0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던 지난해 기업의 원화대출 규모가 44조 9,000억원에서 올해 11월 그 두 배가 넘는113조원으로 불어난 것만 봐도, 정부의 금융지원으로 얼마나 많은 유동성이 시중에 풀렸는지 잘 알 수 있다.

정부의 금융 지원으로 지난해 10월 0.6%에 이르던 기업 연체율은 올해 10월 0.42%로 낮아졌다. 올해 상반기에 40% 이상의 기업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못 냈던 만큼,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기업 연체율은 지난해 보다 더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은행권 "구조조정 필요" 요구에 당국도 '고심'


금융당국은 유례없던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지원이 많이 이뤄졌지만 기업들의 부실 위험은 감당할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3분기부터 기업실적이 회복 추세이고, 국내은행의 손실흡수 능력 등을 고려하면 금융지원이 은행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만히 놔뒀으면 겉으로 드러날 기업 부실 위험을, 정부가 금융지원을 통해 발현되는 시기를 뒤로 미뤄놓은 만큼 이제라도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금융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두 차례나 만기를 연장한 코로나19 금융지원이 내년 3월에 종료되느니만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기업을 계속 끌고 가는 건 아니라는 게 은행들의 공통적 시각”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의 걱정은 실제 지표로도 드러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2월 7일부터 11월 19일까지 코로나19 피해로 은행에 이자 납입 유예를 신청한 금액은 950억원(8,358건)에 달한다. 연 2.5% 이자율을 적용할 경우, 원금 3조8,000억원의 상환 가능성이 불투명한 셈이다.

금융당국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 내년 3월 금융지원을 중단할 경우 지연된 부실이 급속도로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금융지원을 연장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국의 고심을 반영하듯 최근 윤석헌 금감원장은 '선제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원 방안 연착륙 중요성'을 각각 강조하기도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단계적으로 실물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연착륙을 고민하고 있다”며 “금융시장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조화롭게 풀어간다는 큰 틀에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현 기자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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