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 집권 10년 차 포문을 열 제8차 노동당 대회 개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북한 당국은 감염병과 자연재해, 경제제재 등 중첩된 위기를 타개하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의 시간’을 정초로 앞당기는 승부수를 띄웠다.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당 대회는 그간의 정책 성과를 평가하고, 새로운 중ㆍ장기 전략 노선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ㆍ북미 관계 향방을 가늠케 할 대외 메시지 수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정초 8차 당대회 소집”을 못 박았다. 이어 이달 초에는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1월 하순 평양에서 개최한다고 예고했다. 당 대회 결정사항을 곧바로 법제화하겠다는 의미다. 두 정치 행사를 1월에 몰아 치르는 건 이례적인 ‘속도전’이다. 2016년 7차 당대회는 5월에 열렸고, 최고인민회의는 통상 4월에 해왔다.
북한은 아직 구체적인 당대회 일정을 밝히지 않았지만 1월 초 개최에 힘이 실린다. 당대회에 맞춰 진행 중인 ‘80일 전투’가 오는 30일 종료되기 때문이다. 5년 전에도 북한은 ‘70일 전투’가 끝나고 나흘 뒤 7차 당대회를 열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지난 2일 세미나에서 당대회 개최 시점을 1월 2~5일로 좁히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매년 1월 1일 해온 육성 신년사 발표가 생략ㆍ대체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대회 준비 정황도 포착됐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26일(현지시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수천 명이 대형을 이뤄 ‘결사옹위’라는 붉은색 글자를 형성한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매체는 “평양 동쪽 미림비행장에서도 연습 장면이 관측됐다”며 “당대회 전후 최소 1번의 퍼레이드가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소식통을 인용, “당대회에 참가할 지역 대표자 선발이 완료됐다”고 전했다. 북한 매체는 관련 소식을 다루지 않고 있어, 조 바이든 새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는 1월 중ㆍ하순까지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달 3일 미국 대선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바이든 당선인 승리에 관한 언급을 피해왔다. 그러나 당대회에선 긴 침묵을 깨고 대외 전략 방향을 제시, 한ㆍ미에 메시지를 발신할 것으로 보인다. 양 당국과 전문가들이 김 위원장의 입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다.
미국에는 지금처럼 적대정책 폐기와 6ㆍ12공동성명 이행을 압박하면서도 대화 여지를 열어둘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새 행정부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기까지 최소 반년은 더 필요한 만큼 도발보다 상황 관리를 택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23일 대담에서 “미국과 관련해 (북한이) 유보적이거나 유화적인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많다. 강경한 입장은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보는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리 측엔 보다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 동포’를 언급한 점 등이 일종의 신호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으로선 버티면서 기회를 보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며 “남북ㆍ북미 관계를 파국으로 몰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당대회는 전반적으로 외치보다 당 사업과 민생 경제 등 내치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직접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쳐” 경제발전 5개년 전략 달성에 실패했다고 자인한 만큼, 구체적인 경제 발전 목표가 제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획기적인 노선 변화가 천명되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2018년 선언한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유지하면서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한다는 큰 목표 아래 자력갱생 정신을 강조하는 정면돌파 전략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동신문도 28일자 '자력갱생은 우리 인민 특유의 투쟁정신, 창조본때'라는 논설에서 '자력갱생'이란 단어를 24번이나 반복하며 외부 지원 없이 경제난을 자력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