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범죄 지도'... 마약 줄고 가정폭력 늘고

입력
2020.12.28 19:30
15면
봉쇄 조치에 절도·마약 관련 범죄 감소
아동 학대 저연령화, 사이버범죄도 ↑
수사인력 부족한 美선 살인 급증하기도


지구촌이 1년 가까이 감염병 공포에 떨면서 범죄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강력한 봉쇄 조치 덕에 절도, 마약 등 강력 사건은 줄어든 반면, 가정폭력과 사이버범죄는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최대 발병국 미국에선 마스크 착용과 수사 인력 부족이 맞물리면서 이례적으로 대도시 살인 사건이 폭증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7일(현지시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발생 1년 동안 범죄는 줄지 않고 양상만 바뀌었다”고 전했다. 봄철 1차 봉쇄 당시 절도 등이 감소하고 가정폭력이 증가한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아동이 온ㆍ오프라인에서 폭력 희생자가 된 경우가 두드러졌다. 영국 랭커셔 지역 경찰 당국자는 신문에 “경찰관과 가정폭력 전문가를 피해자가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자선단체 등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크게 증가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집단감염 우려로 학교가 문을 닫은 점도 아동폭력 증가에 한 몫했다. 영국 버밍엄대 법의학 심리학자인 헤더 플로우는 “학교를 대체할 안전 장소가 부족했던 것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며 “부모 출근하고 나면 홀로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거리를 배회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아동 학대는 영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플로우는 올해 7월 케냐에서 1,000명 이상의 아동 학대 생존자를 조사한 연구 결과, “(학대) 아동의 평균 연령은 팬데믹 이전 16세에서 12세로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병원ㆍ연구기관 관련 사이버범죄도 팬데믹 기간 빠르게 늘었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 범죄학자인 브누아 듀퐁은 “생물학적 바이러스(코로나19)가 디지털 바이러스(사이버범죄)를 이렇게 빨리 자극하고, 두 종류의 바이러스가 밀접하게 결합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나라 전역을 틀어막는 초강력 봉쇄가 지속되면서 마약 산업은 전례 없는 ‘불황'을 맞았다. 국가간 이동 제한으로 마약 원재료 공급망이 끊긴데다, 밀매업자들도 완제품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 탓이다. 가디언은 “마약시장이 붕괴되면서 관련 범죄 단체들이 개인보호장비(PPE)나 의약품, 가짜 백신 거래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미국 대도시들처럼 살인 사건이 깜짝 증가한 사례도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4일까지 뉴욕, 필라델피아, 로스앤젤레스(LA) 등 전국에서 가장 큰 10개 경찰서 관할 도시의 살인사건(3,067건)이 전년 동기 대비 40% 가까이 늘었다. 시카고의 경우 지난해보다 무려 55%나 살인 사건이 급증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현지 경찰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커진 시민들의 경제ㆍ심리적 어려움이 강력 범죄를 자극했다고 본다. 일부 도시들이 교도소 내 코로나19 전염을 막기 위해 재소자를 조기 석방한 점도 살인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덩달아 범인 검거율은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범죄 해결 비율은 지난해 66%에서 올해 59%로 7%포인트 낮아졌다. 코로나19 방역 강화가 큰 원인이다. 필라델피아 경찰 관계자는 “의심을 사지 않고 마스크를 쓰게 되자 일부 범죄자들이 더 대담해졌다”면서 “마스크에 후드 모자까지 쓰면 범인을 식별하기가 훨씬 어렵다”고 토로했다. WSJ는 “많은 수사관들이 코로나19로 철수한 것도 혼란을 부채질했다”고 전했다.

허경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