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연말 결산③] 트로트라 쓰고 대세라 읽는다, 가요계 '신바람 붐'

입력
2020.12.25 10:00


그야말로 '트로트 전성시대'였다.

지난해 TV조선 '미스트롯'과 MBC '놀면 뭐하니?-뽕포유 프로젝트' 유산슬(유재석)의 인기를 시작으로 불씨를 틔운 트로트는 2020년 '미스터트롯'을 만나 가요계 트렌드로 거듭났다. 그간 비주류 장르로 여겨지던 트로트가 어엿한 '주류'로 발돋움하며 올 한해 가요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일었다.

▲ '미스터트롯', 임영웅과 '톱7' 트롯맨 신드롬 만들다

지난 3월 역대급 인기 속 막을 내린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본격적인 트로트 '신드롬'의 계기였다.

결승전 당시 대국민 문자투표 폭주로 최종 발표가 보류된 초유의 사태를 빚으며 '몸소' 그 인기를 입증했던 '미스터트롯'은 마지막 방송 35.7%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우여곡절 끝 최종 1위인 진(眞)에 등극한 임영웅을 필두로 톱7에 이름을 올린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는 프로그램 종영 직후 연예계 전반을 종횡무진하는 '괴물 행보'로 가요계의 지각 변동을 알렸다.

톱7을 메인 출연진으로 한 TV조선 자체 예능인 '미스터트롯의 맛'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은 일곱 트롯맨들의 인기에 힘입어 연일 시청률 고공 행진을 기록했고, 타 방송사 예능 역시 두터운 팬덤으로 '시청률 보증 수표'가 된 이들을 향해 쉴틈 없는 러브콜을 보냈다. 어느새 '대세'를 넘어 '신드롬'이 된 이들을 향한 니즈는 비단 방송계의 이야기 만이 아니었다. 광고 시장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톱7'을 모델로 기용하며 팬심 잡기에 나섰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에도 높은 충성도를 자랑하며 열렬한 팬심을 자랑한 중장년층 팬층은 곧 '미스터트롯' 톱7의 가장 큰 무기였다. '1위' 임영웅의 경우 가수 브랜드 평판에서 그룹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과 나란히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리스너들의 분포 폭이 넓은 음원 차트에서도 저력을 과시하는 등 아이돌 못지 않은 화력을 자랑했다.

이와 더불어 '미스터트롯' 톱7은 트로트에만 국한되지 않은 스펙트럼 넓은 소화력과 빼어난 가창력으로 10대, 20대 팬층까지 사로잡으며 대중적 인기까지 견인하는 데 성공했다. 시작은 '트로트 붐'의 주역이었을 지 모르지만, 단발성 인기의 주인공이 아닌 '롱런' 아티스트로서 이들이 펼칠 활약에 더욱 기대가 모인다.

▲ 트로트 전성시대, 아류 오디션부터 '부캐' 열전까지

트로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며 수많은 스타들 역시 성공의 기대를 안고 트로트 가수로의 변신을 알렸다.


코미디언 김신영은 '둘째이모 김다비'라는 부캐(부캐릭터)로 트로트곡 '주라주라'를 발표하며 독특한 콘셉트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이 외에도 조혜련 김재욱(김재롱) 윤형빈 카피추 김원효 신봉선(캡사이신) 이봉원 손헌수 등 다수의 개그맨들이 연이어 트로트 가수로의 변신을 알렸다.

기성 가수와 배우들 역시 트로트의 문을 두드렸다. 슬리피 하리수 김창렬 박준규 최란 박세욱 업텐션 선율 성리 이봉원 강지섭 등 예상치 못한 스타들이 잇따라 트로트 가수로서의 '제2막'을 정조준했다.

이같은 스타들은 물론 비연예인들에게도 트로트 도전의 길을 '활짝' 열어준 것은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었다. 트로트 열풍이 안방극장 예능 판도를 뒤흔든 가운데, SBS '트롯신이 떴다', MBC '최애엔터테인먼트' '트로트의 민족', MBN '보이스트롯' '트롯파이터', KBS '트롯 전국 체전' 등 각양각색의 아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론칭하며 쏠쏠한 재미를 맛봤다.

▲ "아! 테스형"...레전드 나훈아, 트로트 홍수 속 품격으로 찍은 '방점'


너도 나도식 '트로트 홍수'에 대중들의 염증 섞인 반응이 터져 나올 때쯤 새바람을 불어 넣은 이는 '가황' 나훈아였다.

지난 10월 추석 연휴 KBS2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이하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통해 등장한 나훈아는 코로나19 시국 속 침체된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짐과 동시에 시대를 향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올해 74세라는 나이가 무색할만큼 열정적인 무대로 '가황'의 품격을 여실히 증명한 나훈아는 자신의 숱한 히트곡으로 2시간 30분의 무대를 꽉 채웠고, 해당 방송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본 방송 2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특히 나훈아는 당시 공연에서 신곡 '테스 형!'을 공개하며 중장년 팬층을 넘어 젊은 세대에게도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 부르는 파격적인 가사와 현 시대에 대한 질문을 철학적으로 담아낸 가사가 주는 깊은 여운은 전 세대를 관통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견인했다.

트로트계 '전설'이자 데뷔 55년차 가수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찢어진 청바지와 흰색 민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무대를 누비는 가황의 모습은 획일화 되어가는 트로트 시장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2020년 트로트 시장의 문을 '미스터트롯'이 열었다면, 올해 트로트 시장의 새 지평을 연 것은 단연 '가황' 나훈아였다.

홍혜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