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14조 2,000억원 규모의 1차 재난지원금의 소비 증진 효과가 4조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은 4인 가구 기준으로 30만원 가량 소비를 늘리는 데 그친 셈이다.
소멸성인 재난지원금이 모두 사용됐는데도 소비 진작 효과가 미미했던 것은,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들이 원래 하려던 지출을 반대급부로 줄였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재난지원금으로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던 식당이나 학원 등 대면서비스 업종에서 쓰기보다는 옷을 사거나 마트를 이용하는 데 사용했다. 전 가구 소득을 보전하는 방식 보다는 피해업종에 대한 정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3일 공개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지급된 재난지원금 효과로 신용ㆍ체크카드 매출액 4조원이 늘어났다.
KDI는 중앙정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 14조2,000억원에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까지 더하면 최대 19조9,000억원이 시장에 풀린 것으로 분석했다. 이 중 현금이나 상품권, 선불카드 등을 제외한 신용ㆍ체크카드 포인트는 11조1,000억~15조3,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카드 매출액이 4조원 늘어났다는 것은 카드 포인트 형태로 지급된 재난지원금의 약 26.2~36.1%만 추가 소비로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KDI는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은 나머지 70%는 채무 상환이나 저축으로 이어진 것으로 봤다. 카드 포인트 형태로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우선 사용하고, 재난지원금이 없었다면 소비했을 돈은 절반 이상 저축했다는 것이다.
소비 진작 효과를 시기별로 따져 보면 지원금이 지급된 직후에만 그 효과가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직후 4주간(5월 둘째 주~6월 첫째 주)은 매출이 4조4,900억원(주당 1조1,200억원) 증가한 반면, 8월 들어서는 첫째 주 매출이 2,000억원, 둘째 주 매출이 6,900억원 감소했다.
김미루 KDI 연구위원은 “가계가 재난지원금 지급 직후에 소비를 크게 늘리는 과정에서, 미래(8월 초)에 예정된 소비를 미리 당겨서 집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재난지원금 효과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이 컸던 대면 서비스업종보다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했던 업종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KDI 분석에 따르면 재난지원금 지금을 통해 가구점이나 서점, 옷가게, 안경점 등 준내구재 업종의 매출액이 재난지원금 지급 이전에 비해 10.8%포인트가량 늘어났다.
마트나 편의점 등 필수재의 소비도 8.0%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학원이나 목욕탕 등 대면서비스업종의 매출은 3.6%포인트, 식당이나 카페 등 음식업은 3.0%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감염병 확산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대면 소비를 꺼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KDI는 재난지원금 지급 효과가 피해 업종에 골고루 미치지 못하는 점을 들어 '직접적인 선별' 지원이 더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오윤해 KDI 연구위원은 “감염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대면서비스업에 대한 소비 활성화 정책은 방역정책과 상충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전 국민 소득지원만으로는 피해가 큰 사업체의 매출 보전에 한계가 있는 만큼 피해업종 종사자에 대한 직접 소득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