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로 본 2020년 지구촌] ③폭력 향기 더 짙어진 '극우의 반란'

입력
2020.12.3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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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발판 삼아 영역 확장
폭력 증대·공권력 침투 문제 노출

2020년은 극우 세력의 힘을 여과없이 보여준 한 해였다. 감염병 공포를 자양분 삼아 그들은 사회 곳곳에 깊숙이 침투했다. 시위를 통해 바이러스를 막아내려는 각국의 안간힘을 ‘자유 침해’로 탈바꿈 시키고, 심지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존재하지 않는 위기로 치부했다.

미국이 특히 그랬다. 올 여름 지구촌을 휩쓴 반(反)인종차별 시위의 발원지 미국에서는 역설적으로 극우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인권 탄압과 결부 짓고 보건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차별 항의를 겨냥한 집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엄호하는 무장 운동까지 시위의 이유는 다양했다.

폭력 성향도 더욱 두드러졌다. 8월 위스콘신주(州) 케노샤에서 극우주의에 빠진 17세 청소년이 반인종 시위 현장에서 2명을 총으로 쏴 죽였고, 10월에는 봉쇄에 반발하며 미시간 주지사 납치 음모를 꾸민 극우단체 소속 남성 13명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 6년간 테러 음모와 공격성을 분석해 보니 대부분 극우단체 소행이었다. 폭력성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극우주의자들은 코로나19 방역 반대 시위대에 섞여 세력을 맘껏 확장했다. 독일에선 공권력에까지 극우 조직이 침투했다는 사실이 줄줄이 밝혀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지난달 독일 당국은 극우 및 반유대주의 내용을 공유하는 채팅 그룹을 조직하고 여기에 참여한 군인 26명과 경찰 9명을 적발했다. 앞서 독일 정예 반테러ㆍ특수부대 소속 한 소대에서는 극우주의자가 20명이나 나와 소대가 해체되는 일도 있었다.

체코와 폴란드 극우조직들은 정치권에서 위상을 한층 뽐냈다. 폴란드에서 계속된 유례 없는 낙태법 금지 반대 시위에도 극우 성향 여당 ‘법과정의당(PiS)’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세를 불린 극우 집단이 PiS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탓이다. 체코 극우단체의 반코로나19 시위는 공권력과 잦은 충돌을 불렀지만, 극우 정당 ‘자유와 직접민주주의’(SPD)에 오히려 호재가 됐다. 루보미르 코페섹 체코 마라시크대 교수는 29일(현지시간) 유로뉴스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영향으로 정부 규제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극우 정당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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