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에 불똥... 백신 확보마저 눈치보는 인도차이나

입력
2020.12.22 16:00
中백신 선지급 약속에도 美 입김에 수령 어려워 
독재정권·인권문제·통상갈등도 '아킬레스건''

최근 미얀마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비상이 걸린 인도차이나 5개국(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이 유일한 해결책인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이 ‘무료 배신’ 공급을 약속했지만,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해 제안을 덥석 받기가 어려운 탓이다.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 끼어 감염병 위기 앞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빈국의 슬픈 현실이다.

22일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이날 현재 인도차이나 5개국 중 중국산 백신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중국의 최우방을 자처했던 캄보디아마저 “세계보건기구(WHO)가 승인한 백신만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며 중국을 당황케 했다. 같은 친중 계열로 분류되는 미얀마ㆍ라오스 역시 러시아산 혹은 유엔이 중개하는 백신 구매를 위해 동분서주할 뿐이다. 역내 국가 중 그나마 경제적 여력이 있는 베트남과 태국은 비(非)중국산 백신 구매와 자체 개발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인도차이나 국가들이 중국산 백신을 꺼리는 것은 단연 미국의 입김 때문이다. 실제 이들 국가가 중국 백신을 사용할 경우 미국이 줄 수 있는 불이익은 다양하다. 모든 역내 국가에 해당되는 메콩유역 가뭄 사태 지원을 끊는 것부터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유엔,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가 원조나 차관 제공에 등을 돌릴 수도 있다. 특히 국가 재정이 바닥 나 백신 구매를 해외 차관 및 원조에 의존해야 하는 라오스ㆍ미얀마ㆍ캄보디아에는 미국의 변심이 곧 백신 확보 실패나 다름없다.

이에 더해 캄보디아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캄보디아는 앞서 10ㆍ11월 두 차례에 걸쳐 시아누크빌주(州) 내 레암 해군기지에 미군이 건설한 군사시설을 철거하면서 “중국 해군이 빈 자리를 대신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왔다. 미얀마도 로힝야족 난민 사태와 소수민족 탄압 등 인권 문제를 고리로 미국의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태국 역시 올해 7월 이후 4개월간 이어진 반(反)정부 시위 여파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기 어렵다.

통상 압박도 미국이 가진 무기다. 최근 미 재무부가 신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베트남과 관찰국 지위가 이어지고 있는 태국은 다급한 모습이 역력하다. 소빈다 포 캄보디아 평화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인도차이나 나라들이 중국산 백신을 거부하는 것은 미국을 향해 ‘우리는 중국의 대리인이 아니다’라는 신뢰의 표시”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는 한 과거처럼 전 영역에서 중국에 의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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