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변호사 시절 만취해 택시기사에게 행패를 부린 사건과 관련해 21일 “송구하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이 사건이 공개된 지 이틀 만의 첫 입장 표명이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고발과 경찰의 유사 사건 판례 분석에 따라 정식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이 차관은 이날 ‘법무 차관의 입장을 알려드립니다’는 입장문을 통해 “개인적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송구하다. 택시 운전자분께도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제 사안은 경찰에서 검토해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공직자가 된 만큼 앞으로 더욱 신중하게 처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차관은 변호사 신분이었던 지난달 6일 밤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택시기사가 술에 취해 잠들었던 자신을 깨우자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는 등 폭행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 서초경찰서가 해당 사건을 입건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쟁점은 ‘운행 중’인 여객차량 운전자 폭행 행위를 가중처벌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다. 경찰은 앞서 이 사건에 형법상 폭행 혐의를 적용한 뒤 택시기사의 ‘처벌 불원서’를 이유로 내사종결 처리했다. 단순폭행죄는 피해자가 원치 않을 땐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반(反)의사 불벌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차관에 대해 ‘봐주기’ 처분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은 유사 사례에 대한 판례 분석을 통해 사건을 재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단순 폭행으로 의율한 판례도 있고, 특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판례도 있다”며 “전체적으로 판례를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차관 사건 처리과정이 아주 이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검ㆍ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내년 1월부터 1차적으로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의 사건 처리가 입방아에 오르자 경찰은 곤혹스러워하는 모양새다.
경찰 판단을 따르겠다고 이 차관이 밝혔지만, 자칫하면 공식 수사를 받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지난 19일 특가법을 적용해야 한다면서 대검찰청에 이 차관을 고발했고, 이튿날에는 이 차관 사건을 내사 종결한 경찰을 수사 의뢰했다. 다만,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제한하는 검ㆍ경 수사권 조정 시행을 앞두고 있어 검찰이 이 차관 사건을 맡아 수사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내고 수사지휘를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 차관이 정식 수사 대상이 되면, 이미 사의를 표명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이어 현 정부가 임명한 현직 법무부 장ㆍ차관이 모두 임명 전 사건으로 동시에 수사를 받게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고검은 서울동부지검이 수사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27)씨의 군 복무 중 특혜 의혹 재수사 여부에 대한 항고 사건을 검토 중이다. 사건 수사가 미진했다는 판단에 따라 재기수사 명령이 내려지면 수사가 재개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