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 속도가 기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70%나 빠르다는 변종 코로나19의 등장에 세계가 떨고 있다. 진원지는 서방에서 처음 자국민에게 코로나 백신을 접종한 영국이다. 이 공교로운 일치의 이면(裏面)은 상징적이다. 바이러스의 진화를 낳는 게 숙주의 면역 확보라는 점에서다. ‘백신의 역설’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수백만명을 대상으로 한 백신 대량 접종이 회피ㆍ저항 같은 면역 반응에 대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적응을 부추기고, 그 결과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실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항체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변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논문들도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영국발(發) 변종 코로나의 강한 감염력도 이런 진화의 산물이자 증거라는 것이다.
면역 규모 확대가 변종 코로나 양산을 초래할 가능성은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런던 퀸메리대 임상 역학 조사관인 딥티 구르다사니 박사는 NYT에 “처음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안정적이고 백신에 의한 면역 반응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과학자들이 생각했지만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몇 달 동안 분명해졌다”며 “대량 백신 접종으로 선택 압력이 커질 경우 이런 돌연변이는 더 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근 석 달 전인 9월 말 런던 또는 인근 켄트에서 처음 나타난 이 변종의 존재감은 갈수록 두드러졌다. 지난달 중순 28% 수준이던 런던 내 확진 사례 점유율이 이달 9일부터 1주일 기간에 62%까지 커졌다. 이번에 보고된 변종이 영국 남부 인구 밀집 지역에서 몇 달간 돌던 다른 경쟁 변종을 밀어냈고, 다른 변종보다 많은 10여차례의 독특한 변이를 일으켰다는 게 신문이 전한 전문가의 추측이다.
외신을 종합하면 변이가 일어난 부분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이라는 게 현재까지 과학자들의 분석 결과다. 쇠뿔 모양 돌기인 이 단백질은 인체 세포의 ACE-2 수용체와 결합해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이번 변종은 스파이크 단백질이 ACE-2 수용체와 더 쉽게 결합할 수 있도록 변화한 경우다.
아직 변종이 치명률을 더 높인다는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만 치명률이 기존 바이러스와 비슷해도 전파력이 더 강한 만큼 이 바이러스에 의해 같은 기간에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위험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이 변종이 코로나 백신을 무력하게 만들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백신이 유도하는 단순 면역 반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체의 면역 체계가 워낙 복잡하고 강력하다는 게 근거다.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바이러스학자 카르틱 찬드란은 NYT에 “1,000개의 큰 총이 사람 몸 안에서 바이러스를 겨누고 있는 셈이어서 바이러스가 아무리 뒤틀고 꼬아도 온갖 체내 항체들과 싸울 수 있는 유전적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 프레드 허치슨 암연구센터의 진화생물학자 제스 블룸 박사도 이 신문에 “백신을 무력화할 만큼 바이러스가 충분히 진화하려면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스위스 베른대의 분자 전염병학자인 엠마 홋크로프트는 NYT에 “1년 내에 인구의 60%에 백신을 투여하고 그동안 확진자 수를 계속 줄이는 게 바이러스의 변이 기회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다시 확산하는 코로나19에 백신으로 반격하려던 영국은 변종 코로나 출현으로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신세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영국발 입국 차단 조치를 취하는 나라가 속출하고 있다.
이날 영국발 입국을 제한했거나 제한할 예정인 유럽 국가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불가리아 등이고, 유럽 밖에서도 터키,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엘살바도르, 홍콩 등이 가세했다. 북미에서는 캐나다가 영국발 항공편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프랑스는 21일 0시를 기해 48시간 동안 영국발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식료품은 물론 코로나 백신 공급에까지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이 영국을 격리했다”고 묘사했다.
현재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4단계를 신설해 잉글랜드 남동부에 발령하고 긴급 봉쇄에 돌입한 상태다. 이날 세계보건기구(WHO)는 영국과 긴밀히 협력해 변종 코로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