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일 돌연 금강산 관광 독자 개발 카드를 꺼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김덕훈 내각 총리가 금강산 관광지구를 시찰하고 이곳을 ‘우리 식으로’ 개발할 것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내각 총리는 대내 경제를 총괄한다.
새로운 카드는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금강산 시찰 당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며 독자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남측 시설물을 모두 철거하라”는 대남 통지문을 발송했다. 김 위원장 구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돌발 변수로 멈춰 섰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북한은 내부 경제 활동을 대부분 중단했다. 올 1월 말 ‘철거를 당분간 연기한다’는 통지문을 남측에 보낸 이후 줄곧 잠잠했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와 국제사회 경제 제재, 지난 여름 수해라는 삼중고를 겪은 북한의 최우선 과제는 민생이다. '한가하게' 금강산 관광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올 4월 완공 예정이었던 ‘원산-갈마 해안 관광지구’도 경제난 때문에 개장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국경도 폐쇄 상태다.
북한이 난데없이 금강산 관광 개발을 들고 나온 것은 경제난에 지친 주민들의 관심을 돌리는 게 1차 의도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강산이 위치한) 통천은 올 여름 수해로 피해를 입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방문하지 못했다”면서 “내년 1월 초 열리는 8차 당대회를 앞두고, 저조한 경제 성과에 실망한 민심을 달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내각 총리는 “금강산지구를 국제관광문화지구로 훌륭하게 꾸리고 인민들이 자연 경치를 한껏 즐기며 휴식할 수 있게 '선 편리성, 선 미학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킬 것”이라며 ‘인민을 위한 선물’임을 강조했다.
다음 달 20일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를 의식한 행보이기도 하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돈이 없는 북한은 당장 금강산을 자체 개발할 여력이 못 된다”며 "한국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를 선제적으로 설득해 대북 제재를 완화하도록 움직여달라는 우회적 압박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20일 금강산 독자 개발 선언은 2018년 남북이 합의한 동해 관광특구 개발은 물론이고 원산-갈마지구를 공동 개발하자는 남측 제안을 재차 뿌리친 것이다. 남북한 정상은 2018년 9·19 공동선언에서 '설악산-금강산-원산'으로 이어지는 동해 관광특구 공동 개발에 합의했지만 이후 진전은 없다. 지난해 김 위원장의 '금강산 시설 철수' 언급 직후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이 제안한 '원산-갈마지구 개발'에도 북한은 무응답이다.
금강산 시설 정리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남북 실무 접촉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남북관계 진전의 고리가 되긴 어려운 상황이다. 통일부는 20일 "남북이 금강산 현안을 해결하고 국제적 관광지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성에 공감하는 만큼, 적절한 시기에 만나 협의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 사업을 매개로 남북관계를 움직여 보려는 남측과 달리, 북한은 독자 개발에 따른 외화 벌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만 북한의 선언이 당장의 남북관계 파국을 의미한다고 보긴 어렵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금강산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한국인들이 관광을 가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남측에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당 창건 75주년 행사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면 남녘 동포들과 손을 맞잡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