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선  K-방역

입력
2020.12.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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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국 가디언이 초기 코로나 방역에 성공했던 한국이 지금 맹렬한 확산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15일 보도했다. 지난 4월 세계보건기구(WHO)가 방역 모범국가로 상찬하는 등 봉쇄조치 없이 확산을 통제했던 한국이지만, 섣부른 거리 두기 완화조치로 보건 위기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K-방역’이 실패했다고 단정짓지는 않지만 최근 한국의 확진자 폭증세를 우려하는 외신보도가 잇따른다.

□외국에서 주목했던 K-방역의 요체는 정부의 속도감 있는 조치였다. 지난 2월 대구에서 신천지교회발 집단감염이 발생해 신도 9,000명을 전수검사할 때 2주 가량 걸렸는데, 3개월 뒤 쿠팡 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터지자 5,000명 대상 검사를 3일만에 해냈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검사 도입, 신용카드 정보와 폐쇄회로(CC)TV를 활용한 확진자 조사, QR코드 도입 등 공격적인 검사ㆍ추적이 확산세 저지의 수훈갑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의 사례는 기민한 정부 대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귀감이 된다는 전문가의 평가를 소개하기도 했다(6월 16일).

□감염병 사태가 나면 방역과 의료자원 재분배, 감염 취약 시설 개선 투자 등이 병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검사-추적-격리' 중심의 방역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게 독이 됐다. 신천지, 8ㆍ15집회 등 타깃이 분명할 때는 통제 중심의 K-방역이 위력을 발휘했지만 일상 속 감염 폭증으로 타깃이 흐려지자 한계가 드러났다. 코로나 소강기 때 겨울 대유행에 대비해 병상ㆍ장비ㆍ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경고가 여러 차례 나왔지만 정부의 의사결정은 한가했다. 수도권 병상 부족 사태가 현실화하자 2025년까지 공공병상 5,000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현실은 입원대기 중 사망과 컨테이너 병상이다.

□무료 선별검사소 운영 등 검사 확대가 확산세를 꺾는 데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당국에 ‘전수검사 만능론’이 퍼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신중해야 할 일을 서두르고(단계 하향) 적시에 해야할 과제(의료자원 재분배)를 미루면 결국 사달이 난다. K-방역이 시험대에 섰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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