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우먼' 감독 "관대하고 친절한 영웅이 필요한 시기"

입력
2020.12.1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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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앞두고 주연배우 갈 가도트와 온라인 기자회견


“올해 모두가 굉장히 힘든 한 해였습니다. 제 영화로 조금이라도 기쁨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준비했으니 즐겁게 관람해주세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통은 영화계에도 예외는 아니다. 겨울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국내외 상업영화들이 개봉을 잇달아 미루는 엄혹한 시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원더 우먼 1984’는 23일 극장 상영을 시작한다. ‘원더 우먼 1984’의 패티 젱킨스(49)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코로나19 대유행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코로나19는) 우리가 예전에 얼마나 즐길 게 많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18일 오전 주연배우 갈 가도트(35)와 함께 한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서였다. 젱킨스 감독은 2017년 할리우드 역사상 여성감독으로서 처음 블록버스터(원더 우먼)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젱킨스 감독은 데뷔작 ‘몬스터’(2003)로 샬리즈 시어런에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원더 우먼 1984’는 ‘원더 우먼’(2017)의 속편이다. 미국 DC코믹스의 유명 만화가 밑그림이다. 중년 세대에게는 1970년대 TV시리즈로 익숙한 슈퍼히어로 원더 우먼(갈 가도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탐욕에 사로잡힌 악당 맥스로드(페드로 파스칼)의 악행에 맞선 원더 우먼의 활약을 1984년을 배경으로 펼친다. 투자배급사 워너브러더스가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HBO맥스와 극장 동시 공개를 결정하며 국내 극장 개봉이 가능했다.



전편이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은 반면 ‘원더 우먼 1984’는 60여년을 훌쩍 건너 뛴 시대를 시공간으로 삼는다. 젱킨스 감독은 “(1차 세계대전 때와 달리) 훨씬 풍요롭고 밝은 1980년대를 보여주며 전편과 다르게 캐릭터를 구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해는 1984년”이라며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고 예술이 융성했던 때”라고 덧붙였다. 가도트는 “1984년 제가 태어나기 전 해라 당시 기억은 없다”면서도 “1980년대는 음악과 예술, 패션 등이 발전을 이룬, 전반적으로 특별하고 독특한 시대”라며 젱킨스 감독을 거들었다. 가도트는 “각본을 성경처럼 읽고 이에 충실하려고 했다”며 “당시 영화나 사진 등을 참고하기보다 저희만의 1984년을 만드는데 집중했다”고도 말했다.

여성의 눈으로 영화를 만들어 감독의 신작답게 ‘원더 우먼 1984’에는 여성 악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남자들에게 종종 괴롭힘 당하는 책벌레 고고학자이었다가 신비로운 돌 덕분에 강력한 힘을 얻게 된 여인 바바라(크리스틴 위그)다. 젱킨스 감독은 “바바라는 영화를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한 인물”이라며 “매우 흥미롭고 원작 만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다가 맥스로드라는 악당을 끌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1941년 만화로 첫 선을 보인 원더 우먼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젱킨스 감독은 “악인을 처단하면 선이 이긴다는 (단순한) 신념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며 “세상은 훨씬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기에 관대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영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도트는 “(’원더 우먼 1984’가 전하는)사랑과 연민, 공감, 사람들의 결속은 선을 의미한다”며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라고 밝혔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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