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가져온 저금리 현상이 올해 전셋값 급등을 불러왔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일각의 해석에 대해 이주열 한은 총재가 "수급 불균형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고 반박했다.
한은은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0%대인 물가상승률을 서서히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 총재는 17일 물가안정목표제 운영상황 점검 및 송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저금리와 전셋값 불안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엄밀히 보면 전셋값은 올해 6월 이후 급등하고 있는데, 사실상 저금리 기조는 그 이전부터 상당 기간 유지돼 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저금리가 전셋값 폭등의 주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무래도 전세시장 수급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확산된 데서 더 크게 기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 전셋값 급등 현상이 수개월째 지속되자 국토부를 비롯한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은 "금리가 떨어진 영향"을 주요 원인을 거론해 왔다. 저금리로, 세입자는 월세보다 이자 부담이 적은 전세를 찾고 집주인들은 높아지 수요 속에 값을 올려 받으면서 전세가격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은 이런 주장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금리와 전세가격 사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인과관계가 없다. 개정 임대차법 시행을 전후해 전셋값 상승폭이 커졌다"고 지적한 데 이어, 이날 이 총재가 이런 견해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 총재는 이날 "올해 1~1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0.5% 상승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한은의 연간 물가안정 목표(2%)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국제유가가 급락한데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고교 무상교육이 올해 들어 확대되고 9, 10월 중 전국민 통신비 지원 등이 물가 수준을 더 낮췄다.
이 총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물가상승률이 0%대에 그쳤지만,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 내외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에 비해 통화정책을 활용한 물가 목표 달성이 어려운 이유로 이 총재는 "소비 상황이 안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제유가 하락과 강화된 정부 복지정책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이미 전세계 주요국 정책금리가 '제로(0)'에 가까운 상황에서 통화정책만으로 물가를 목표 수준까지 끌고가는 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의 경제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코로나19 전개 상황"이라며 "감염병 확산세가 이번 겨울을 넘어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소비 위축이 분명이 내년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만 해도 비교적 높은 수치인 3%로 잡은 내년 성장률 전망에 대해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올 겨울 중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본 후 성장률 전망 조정 여부를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