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지세(騎虎之勢) 정국

입력
2020.12.14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달리는 형세인 '기호지세(騎虎之勢)'는 시작한 일을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을 일컫는다. 수(隨)를 세우고 천하를 통일한 문제(文帝·541~604)가 북주(北周)의 정제(靜帝)를 겁박해 황제 자리를 넘겨받으려고 궁에 들어가자 그의 부인 독고(獨孤)가 편지를 보내 전한 말이다. ‘대사가 벌어져 호랑이에 올라탄 형세여서 이제는 중도에서 내릴 수 없고, 내리면 잡아먹히고 말 것이니 반드시 뜻을 이루라’는 내용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맞선 형국이 딱 ‘기호지세’다. 10월 국정감사 전만 해도 윤 총장은 절친한 인사들과의 사석에서 “대통령이 불신임 뜻을 밝히면 물러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 아래 추 장관의 감찰 착수와 직무배제 등 파상 공세가 이어지자 ‘정면, 끝장’ 대응으로 입장을 바꿨다고 한다. 명분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 수호지만, 검찰 조직으로선 큰 부담과 내상이 불가피하다.

□추 장관도 정치 생명을 걸고 윤 총장 내치기에 올인한 상태다. 15일 법무부 징계위를 앞두고는 SNS에 브라질 검찰 사례를 들거나 국회 본회의장에서 검찰을 비판한 서적을 읽으며 검찰의 정치적 성향과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부각하는 등 결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강경 일변도 태도는 문 대통령의 외통수 선택을 압박하는 결과가 됐고, 선거를 앞둔 여당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론 ‘비호감 여성 서울시장 후보 1위’에 오르는 수모까지 겪는 상황이다.

□기호지세에 처한 이들은 또 있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협치 약속을 접고 집토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입법 독주를 진두지휘 중이다. 그 사이 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에 뒤처졌다.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부동산 대책, 방역 대응 등에서 이 대표, 민주당과 미묘한 경쟁ᆞ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 중 누군가는 ‘뜻’을 이루겠지만, 누군가는 호랑이 등에서 떨어져 먹잇감이 될 것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민심의 향배다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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