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융제재 탓에... '아내 카드' 쓰는 홍콩 고위 당국자들

입력
2020.12.14 04:30
美, 홍콩 전·현직 당국자 29명 제재
금융기관엔 '세컨더리 보이콧' 예고
민주파 "금융에 초점... 中 징벌해야"

“내 월급은 아내 계좌로 입금된다. 휴대폰 요금도 낼 수 없다. 쇼핑ㆍ외식도 아내 카드로 지불해야 한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강행을 이유로 미국 재무부가 홍콩 전ㆍ현직 고위 당국자 29명을 대상으로 단행한 금융제재 조치가 효과를 내는 분위기다. 제재 당사자들이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보다 규모가 큰 홍콩의 금융부문에 초점을 맞춰 중국에 징벌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홍콩 민주화 세력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강도 높은 제재가 취해져야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홍콩 당국자는 12일(현지시간) 현지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미 행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홍콩 은행 대다수가 계좌를 정지했다”고 전했다. 다른 당국자는 “미국의 제재 목록에 포함된 이후 이틀 만에 홍콩 소재 미국 금융기관이 ‘더 이상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며 “은행 역시 계좌를 폐쇄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용카드도, 전자 결제도 이용이 불가해 아내가 없으면 현금이나 옥토퍼스카드(교통카드 등의 기능을 갖춘 선불카드)만 사용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홍콩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 역시 지난달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해 모든 사무에 현금을 쓰고 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홍콩에 거점을 둔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은 SCMP에 “우리가 활동하는 시장의 법률과 규칙,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가 올해 10월 의회 제출 보고서를 통해 재무부 재제 명단에 오른 인물과 거래를 한 금융기관을 6개월 이내에 식별할 것이라며 ‘세컨더리 보이콧’을 예고한 것과 관련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때문에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미국과의 지속적으로 거래를 하려면 제재 인물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게 은행 측 항변이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금융 제재에도 직면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앞서 8일 “미국에서 영업 중인 일본 은행들이 미국의 제재에 부응해 람 장관의 계좌를 동결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홍콩 민주파는 미국이 금융제재를 더 확대하길 바라는 눈치다. 지난달 30일 홍콩을 떠나 미국 망명길에 오른 식스투스 바지오 렁(梁頌恒) 전 입법회 의원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이 홍콩의 금융부문에 징벌적 제재를 가해 중국을 협상장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콩 민주화를 위해 미국이 가진 금융 무기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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