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기구가 화이자 백신 긴급사용 승인을 권고하면서 영국에 이어 미국도 백신 접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이 세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중대 전환점이 될 전망이지만, 백신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 탓에 실제 접종까진 고비마다 넘어야 할 벽이 적지 않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접종해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이 같은 불신이 면역체계 확보에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을 종합하면, 백신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미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급하게 만든 백신의 안전성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각 기관에서 속속 내놓고 있는 설문조사는 이 같은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가 성인남녀 1,1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백신을 맞겠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47%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1만2,6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10명 중 6명만이 접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유색인종의 불신이 높다. 코로나 관련 연구기관인 ‘코로나 컬래버레이티브’ 조사에 따르면 미국 흑인 중 코로나19 백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비율은 14%, 라틴계는 34%에 그쳤다. 과거 미 정부가 흑인사회를 대상으로 강행했던 비 윤리적인 의료 실험을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에 흑인과 라틴계 다수가 백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중 이들 인종의 비중이 40%에 이른다는 점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흑인과 라틴계를 취약집단으로 분류하고, 해당 인종의 대가족 고령자에게 백신을 우선 접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접종을 거부할 경우 미국 내 코로나19 치료에까지 지장을 줄 수 있다. 보건당국은 사회구성원 70% 이상이 맞아야 집단면역 효과로 바이러스 통제가 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는데, 이 계획에 제동이 걸리는 셈이다.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많은 미국인들이 코로나19 백신을 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국가가 광범위한 면역체계를 확보하는데 위험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신이 정쟁의 소재가 된 점도 풀어야 할 과제다. 시카고대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중 백신을 맞겠다는 비율은 60%였지만 공화당 지지자에서는 이 비율이 40%로 급감했다. 이밖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의 코로나19 백신 ‘가짜 뉴스’와 부정적 견해도 접종 회의론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불신의 벽을 넘는다 해도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화이자는 16~85세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16세 미만이나 임산부, 수유중인 여성, 면역체계가 손상된 사람 등 일부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이들 역시 안전성 데이터가 확보될 때까지 ‘사각지대’에 놓여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