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 "겨울보다 고용 한파가 더 추워요"

입력
2020.12.09 16:30
대구경비노동자협회 준비위, 9일  대구시청서 경비원 고용안정 위한 실질 대책 마련 요구
일부 아파트는 기존 업무에 조경 청소 시설보수 업무까지 추가...거꾸로 가는 '아파트 경비노동자 보호법'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B(67)씨는 지난해부터 6개월 단위 계약으로 1년여 동안 일하다 최근 해고됐다. 아파트 관리용역업체 측에서 신종 코로나 사태 등으로 인한 경비 절감 등을 이유로 근무 연장을 하지 않은 것이다. 계약을 연장한 동료들은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달리 방법은 없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아파트 단지들이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경비원들이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대부분 3~6개월 단기 근로 계약 형태인 경비원 감원이 1차 사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2018년부터 대구지역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A(65)씨도 올 겨울이 유달리 춥게 느껴진다. 하루 24시간 근무 중 8시간 휴식하는 그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부 아파트 경비원들은 4시간씩 쪼개 휴식하다보니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A씨는 "최저임금이 계속해서 올라가는데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아파트 단지가 경비원부터 줄여 비용을 절감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경비원 규모가 전반적으로 줄었는데, 여기서 더 줄이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대구경비노동자협회도 9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비원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우달 대구경비노동자협회 준비위원장과 이경숙 대구 중구의회 의원,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정 위원장 등은 "지난 9월 '아파트 경비노동자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 일부 개정이 이뤄졌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업무 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으면서 경비 노동자부터 줄이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아파트는 기존 업무에다 조경, 청소, 시설보수 업무까지 추가로 지시하고 있어 경비원들 사이에서는 '이게 무슨 보호법이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초단기 근로계약 형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용역업체가 3, 6개월 등 초단기 근로계약으로 아파트 경비원들을 손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면서 경비원들이 명확한 기준도 없어 아파트에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구시와 대구시의회를 향해 △아파트 경비원들과의 현장 간담회 △경비원 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상생협약 체결 △경비노동자들의 자조 조직 활동 지원 △전담 상담센터, 마을노무사 제도 도입 등을 요구했다.

정우달 대구경비노동자협회 준비위원장은 "아파트 경비원은 대다수 도시 아파트에서 없어지면 안될 필수 인력"이라며 "이제는 대구시가 직접 나서서 정확한 실태 파악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수성구와 달서구, 서구 등에서 '공동주택 경비노동자 보호조례'가 통과됐다. 북구에서는 지난 1일 해당 조례안이 구의회 상임위에서 부결됐다.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상생협약과 조례안을 통해 실질적으로 경비원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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