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만 하고 책임은 싫어'...이사 등재 회피하는 대기업 총수일가

입력
2020.12.0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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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일가 이사회 직접 참여 16%...갈수록 감소
'거수기' 이사회도 여전...상정 안건 99% 그대로 가결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그룹) 계열사 가운데 총수 일가가 이사회에 직접 참여해 책임경영을 하는 회사가 1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 이사회는 상정된 안건의 99% 이상을 원안 그대로 통과 시켜 '거수기'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올해 공시 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지배구조 현황을 공개했다. 올해 지정된 64개 그룹 가운데 신규 지정 등 6개를 제외한 58개 그룹 2,020개 계열사가 분석 대상이다.


총수일가 이사 등재율 16.4%... 지주·주력회사만 높아

총수가 있는 51개 그룹의 계열사 1,905개 가운데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313개(16.4%)였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08개(5.7%)에 불과했다. 총수가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그룹은 20개인데 이 중 태광, 삼천리 등 10개는 총수 본인뿐 아니라 2·3세조차 단 한 곳의 계열사에서도 이사로 등재되지 않았다.

최근 5년 연속 분석대상에 올라 비교할 수 있는 21개 그룹만 놓고 보면, 올해 총수일가가 이사회에 참여한 계열사 비중은 13.3%로 전년 대비 1.0%포인트 하락했다. 이 비율은 2016년 17.8%에서 매년 하락하는 추세다. 총수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기 위해 이사 등재를 꺼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지주회사의 총수일가 이사 등재 비율은 80.8%로 높은 편에 속했다.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54.9%), 주력회사(39.8%) 등도 마찬가지였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주력회사, 지주회사는 총수일가의 지분이 많아 이사로 등재하는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상정 안건 99% 원안 가결... 여전한 '거수기' 이사회

이사회의 견제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그룹 상장사 266개에서 이사회 상정 안건 중 99.5%가 원안 가결됐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등에서도 전체 2,169개 안건 중 99.4%를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의 경우 총 692건 가운데 한 건을 제외하고 모두 원안 가결되기도 했다. 성 과장은 "수의계약으로 맺은 내부거래 안건 중 수의계약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안건이 78%에 육박했다"며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계열사 퇴직임직원을 다시 사외이사... "양적으로만 개선"


사외이사 구성 자체가 견제 역할에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19개 그룹 35개 회사는 42차례에 걸쳐 계열사 퇴직임직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성 과장은 "회사에서 수십 년간 근무한 사람을 자기 회사의 사외이사로 쓰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의사결정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해상충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배주주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양적으로 확충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 상장사 266개는 관련 법에 따른 선임 기준보다 사외이사를 119명 초과해 선임하고 있으며,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96.5%였다. 집중·서면·전자투표제를 하나라도 도입한 회사는 147개로 1년 사이 47개나 늘었다.

세종=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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