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그룹) 계열사 가운데 총수 일가가 이사회에 직접 참여해 책임경영을 하는 회사가 1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 이사회는 상정된 안건의 99% 이상을 원안 그대로 통과 시켜 '거수기'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올해 공시 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지배구조 현황을 공개했다. 올해 지정된 64개 그룹 가운데 신규 지정 등 6개를 제외한 58개 그룹 2,020개 계열사가 분석 대상이다.
총수가 있는 51개 그룹의 계열사 1,905개 가운데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313개(16.4%)였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08개(5.7%)에 불과했다. 총수가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그룹은 20개인데 이 중 태광, 삼천리 등 10개는 총수 본인뿐 아니라 2·3세조차 단 한 곳의 계열사에서도 이사로 등재되지 않았다.
최근 5년 연속 분석대상에 올라 비교할 수 있는 21개 그룹만 놓고 보면, 올해 총수일가가 이사회에 참여한 계열사 비중은 13.3%로 전년 대비 1.0%포인트 하락했다. 이 비율은 2016년 17.8%에서 매년 하락하는 추세다. 총수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기 위해 이사 등재를 꺼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지주회사의 총수일가 이사 등재 비율은 80.8%로 높은 편에 속했다.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54.9%), 주력회사(39.8%) 등도 마찬가지였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주력회사, 지주회사는 총수일가의 지분이 많아 이사로 등재하는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견제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그룹 상장사 266개에서 이사회 상정 안건 중 99.5%가 원안 가결됐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등에서도 전체 2,169개 안건 중 99.4%를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의 경우 총 692건 가운데 한 건을 제외하고 모두 원안 가결되기도 했다. 성 과장은 "수의계약으로 맺은 내부거래 안건 중 수의계약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안건이 78%에 육박했다"며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 구성 자체가 견제 역할에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19개 그룹 35개 회사는 42차례에 걸쳐 계열사 퇴직임직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성 과장은 "회사에서 수십 년간 근무한 사람을 자기 회사의 사외이사로 쓰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의사결정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해상충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배주주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양적으로 확충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 상장사 266개는 관련 법에 따른 선임 기준보다 사외이사를 119명 초과해 선임하고 있으며,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96.5%였다. 집중·서면·전자투표제를 하나라도 도입한 회사는 147개로 1년 사이 47개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