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전화 부스, 빨간 이층버스와 함께 영국 거리의 상징이던 '블랙캡'(검은색 고급 택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생계가 막막해진 택시기사들이 하나 둘 운전대를 놓으면서다. 시내 곳곳에 운행을 중단한 택시들이 쌓여가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시내 곳곳에서 '택시 묘지'가 증가하고 있다"며 "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가 황량해지자 택시 기사들이 운전을 중단한 결과"라고 보도했다. 실제 영국 런던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8일 기준 운행 중인 블랙캡은 1만5,000대로 코로나19 확산 이전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수요가 급격히 줄자 택시기사에게 차량을 대여해주는 회사인 GB 서비스와 셔벗 런던은 도시의 농지, 주차장 등에 각각 220대와 400대의 유휴 차량을 보관하고 있다.
운행이 줄자 택시 기사들은 '생계 절벽'을 마주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많은 이들이 3월 이후 수입이 0원을 기록하고 있다"며 "전체 기사 운임은 코로나19 이전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NYT 역시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던 택시 기사들은 코로나19로 훨씬 더 큰 실존적 위협을 마주했다"고 전했다. 낮아진 소득에 차량 대여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영국 택시운전자협회(LTDA)에 따르면 런던에서 대여가 아닌 본인 소유로 택시 차량을 보유한 기사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탄소 배출 규제를 위해 2018년부터 신규 택시 면허를 전기차에만 부여한 것도 기사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최근 2년사이 택시 기사를 시작한 이들은 모두 새 전기차를 사서 일을 시작한 셈이기 때문이다. BBC는 "하루 평균 35파운드(약 5만원)를 버는 기사들이 매달 950파운드(약 138만원)에 달하는 전기차 대출을 갚고 있다"며 전기차의 구매 대금 상환이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재정 손실에 대한 구제를 담당하는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개인 거래로 인한 대출금까지는 구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국의 경우 택시기사가 되려면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해 이들은 다른 직업으로 전환도 쉽지 않다. 런던 택시 운행은 필기와 구술, 실기시험을 모두 포함하는 까다로운 ‘지식시험’(The knowedge)을 거쳐야만 한다. 시험 통과를 위해 320여개의 노선과 2만5000개의 거리, 2만여개의 랜드마크와 공공장소도 외워야 하기 때문에 통상 2~4년이 걸린다. NYT는 "택시기사가 되기 위해 인생의 많은 것들을 투자한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택시 이외의 업계로 옮기기 쉽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