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없는 '소소위' 예산 심사 안 한다더니

입력
2020.12.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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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2일 본회의에서 558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올해도 고질적인 밀실 심사 관행은 되풀이됐다. 투명한 심사로 예산 낭비를 막겠다는 약속이 또다시 공염불이 된 것이다.

여야가 2014년 이후 6년 만에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키긴 했으나 내년 예산안은 당초 정부안(555조8,000억원) 보다 2조2,000억원이나 증액됐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예산이 늘어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1년 만이다. 3차 재난 지원금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산이 반영됐다고 하지만 여야가 선심성 지역구 사업을 챙기기 위해 손쉬운 증액을 택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공식 회의 대신 비공개 밀실에서 최종 합의가 이뤄진 것이 여야 간 예산 나눠먹기의 대표적 징표다. 지난달 16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예결위 조정소위에서 합의되지 못한 예산안은 이른바 ‘소(小) 소위’로 불리는 3인 협의체(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로 넘어가 마무리됐다. 이 회의는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회의록도 없다. 예컨대 국토교통위 예산소위에서 국토교통부가 증액 거부 의사를 밝힌 일부 사업마저 이 회의를 통해 예산이 늘어 났는데도 그 이유를 확인할 길은 없다. 국회발 예산 증액이 어떤 근거에서 이뤄졌는지 알 수가 없는 구조다.

여야는 그간 이 같은 밀실 깜깜이 심사를 개선하거나 최소한 회의 기록이라도 남기는 관행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나 허언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회 혁신자문위원회는 쪽지예산과 밀실 심사를 근절하는 방안을 권고했고, 더불어민주당의 일하는 국회추진단도 올해 6월 밀실 심사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7월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된 국회법 개정안에는 이 같은 방안이 은근슬쩍 빠졌다. 여야가 뜯어고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이 같은 깜깜이 심사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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